시기하는 사람들
▉ 오늘의 말씀 : 삿 12:1-7
에브라임이 시비를 걸어옴(1-3)
[1] 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쪽으로 왔습니다. 그들이 입다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암몬 사람들과 싸우러 강을 건너갈 때에 왜 우리를 부르지 않았소? 우리는 당신과 당신 집을 불로 태워 버리겠소.” [2] 입다가 그들에게 대답했습니다. “내 백성과 나는 암몬 사람들과 큰 싸움을 치렀소. 나는 당신들을 불렀지만, 당신들은 나를 도우러 오지 않았소. [3] 나는 당신들이 나를 도울 뜻이 없는 것으로 알고, 내 목숨을 걸고 암몬 사람들과 싸웠소.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셔서 그들을 물리치게 해 주셨소. 그런데 이제 와서 당신들이 나와 싸우겠다니, 이게 어찌 된 일이오?”
에브라임의 패배(4-7)
[4] 에브라임 사람들이 길르앗 사람들을 조롱하였습니다. “너희들은 원래 에브라임과 므낫세에서 도망친 자들이다.” 입다는 길르앗 사람들을 불러 모아 에브라임 사람들과 싸웠습니다. [5] 길르앗 사람들은 에브라임 사람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요단 강의 나루터를 먼저 차지하여 지키고 있었습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도망치면서 “강을 건너게 해 주시오”라고 말하면 길르앗 사람들은 “당신은 에브라임 사람이 아니오?” 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하면, [6] 길르앗 사람들은 그 사람에게 ‘십볼렛’이라는 소리를 내 보라고 말했습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그 단어를 바르게 소리내지 못하였습니다. 만약 ‘씹볼렛’이라고 말하면, 길르앗 사람은 나루터에서 그 사람을 죽여 버렸습니다. 그 때, 에브라임 사람 사만 이천 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7] 입다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육 년 동안, 사사로 있었습니다. 그 후 길르앗 사람 입다는 죽어서 길르앗에 있는 어떤 마을에 묻혔습니다.
▉ 묵상을 위한 질문
1. 에브라임 사람들은 왜 입다에게 시비를 걸어왔습니까?
2. 왜 길르앗사람들은 도망하는 에브라임 사람들에게 ‘십볼렛’이라는 발음을 하게 했습니까?
▉ 본문해설
에브라임이 시비를 걸어옴(1-3)
에브라임 사람들은 전에도 기드온에게 자기들을 왜 부르지 않았느냐고 항의했던 것처럼(삿 8:1-3), 이번에도 입다에게 시비를 걸어왔습니다. 그들은 전쟁을 할 때는 협조하지 않았다가 승리를 얻은 후에는 시기를 하고 시비를 걸어오는 잘못된 습성을 보였습니다. 기드온은 그들을 달래며 그들의 못된 행동에 눈감아주었지만, 입다는 그들에게 아첨하지 아니하고 당당하게 맞섰습니다. 이스라엘의 선임지파로서의 자만심으로 가득찬 그들의 불평은 승리의 영광에 참여하지 못하자 이유없는 불만을 터뜨리는 것입니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며 시비거는 모습은 공동체에게 아무런 이익을 주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나쁜 성격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공동체가 어려움을 당할 때 함께 협력하여 극복하지 않고 협조하지 않다가 승리를 얻을 때는 자기 몫을 챙기려는 이기적인 태도는 공동체에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에브라임의 패배(4-7)
입다가 에브라임 사람들과 전쟁을 불사하며 대항하자 에브라임 사람들은 이기지 못하고 도망하여 요단강을 건너는 나루턱에 몰려들었습니다. 길르앗 사람들이 그들이 도망자와 일반인지를 구분하려고 ‘십볼렛’이라고 말하라고 해서 발음이 틀리면 죽였습니다. ‘십볼렛’이란 발음은 요단 동편과 서편 사람들의 발음 차이에서 나온 방언의 차이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결국 교만했던 에브라임 사람들은 싸움에서 패배하여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교만과 이기심은 가장 뿌리깊은 죄악입니다. 외부의 적이 문제가 아니라 내부의 적이 더욱 큰 적입니다. 우리의 공동체 안에서 분열과 다툼의 원인인 교만한 마음을 없애야 합니다.
▉ 적용
1. 나는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불평하는 경우가 없는가?
2. 나는 공동체의 연합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 기도
나 자신을 드러내려는 교만한 마음과 이기적인 마음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항상 협력하는 마음을 갖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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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불평하는 경우가 없는가?라는 적용의 문구가 저를 뜨끔하게 만들었습니다. 무언가 좋은 일을 했거나 제가 큰 일을 했을 때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적이 많기 때문입니다. 공동체의 연합에서 이런 마음은 금물입니다. 저도 이런 마음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잘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동체의 연합을 위해 이런 마음을 버리려는 노력을 많이 합니다. 물론 잘 되지는 않지만 최대한 노력하려고 합니다. 이런 마음이 들 때는 누구나 공동체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나만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자신의 이런 마음 때문에 공동체에 금이 간다면 그것은 더 큰 슬픔이기 때문에 더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불평하는 경우가 없는가? 내가 어떤 행동을 할 때 돌아올 이익과 사람들의 관심을 바라고 행동하지 않아야 하는데 시작과 동시에 누구에게 잘 보이길 원하고 내가 한 행동을 그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라며 또 그 행동에 대한 댓가나 칭찬을 받기를 바란다. 하지만 피드백이 오지 않거나 나쁜 피드백이 올 경우에는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평하는 것 같다. 사랑이나 헌신이나 돌아올 것에 대해 생각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주는 것인데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은 나약한 존재이고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이 노력하고 신경쓰지 않으면 안되는 것 같다. 그런 마음을 가지지 않도록 자꾸 생각하고 베풀려고 노력해야겠다.
내가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울 만한 일을 했을 때, 그것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면 많이 섭섭할 것 같다. 물론 다른사람의 인정만을 받기위해 행동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아무도 몰라준다면 속상할 것이다. 이런 상황속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꾸준한 봉사를 해오는 사람들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정말로 정말로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나역시도 생각한다. 나도 앞으로 누군가의 인정을 바라지 않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끔씩 누군가 나를 알아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기대한만큼 반응이 없으면 굉장히 소심해져서 마음이 울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속으로 나를 알아주지 않은 그 사람을 모욕하게 됩니다.
결국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제 자신 혼자서 불평불만을 하게 됩니다.
내 자신을 알아달라는 것이 아닌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기독교의 영성을 실천했으면 합니다.
나는 교만해지고 싶었던 적이 많았었다.
왜냐하면 자기만 생각하고 있는 내가 잘났다는 걸로 자기만족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동체에 좋지않은 영향을 주고 이기적인 면을 강화시키는 것을 보고
내가 싫어하는 모습을 강화 시킨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0121019 성다은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섭섭해본 적이 있는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봤다. 초중학교 시절에는 확실히 나를 더 부각시키고 남들이 나를 알아줬으면 했던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러나 몸이 자라고 생각이 자라면서 확실히 나를 부각시키는 것보다는 그만큼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바꼈던 것 같다. 단지 시간이 흘러서가 아니라 스스로 더 생각해보고 나 자신부터가 자랑스러울 수 있게 바른 생활을 계속 해나가야겠다.
저는 개인적으로 교만한 사람을 무척 싫어하는데 특히 한국 사회에서 교만함은 잘 인정이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이 남에게는 엄격하지만 자신에게는 관대합니다.
위의 에브라임사람들 처럼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자신을 앞세우려 한다면
결코 공동체나 단체, 작은 단체로는 가족안에서 까지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저도 오늘부터 교만한 마음을 없애고 남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들때마다 저상황에 나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러한 마음을 버리도록 노력하겟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