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막 2:13-22

레위를 부르심(13-17)

13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로 나가셨다. 무리가 모두 예수께로 나아오니, 그가 그들을 가르치셨다. 14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레위는 일어나서, 예수를 따라갔다. 15 예수께서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들도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한 자리에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많이 예수를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6 바리새파의 율법학자들이, 예수께서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예수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저 사람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어울려서 음식을 먹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17 예수께서 그 말을 듣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18-22)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금식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물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파 사람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왜 선생님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습니까?"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혼인 잔치에 온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을 자기들 곁에 두고 있는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터인데, 그 날에는 그들이 금식할 것이다." 21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다가 내고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새로 댄 조각이 낡은 데를 당겨서, 더욱더 심하게 찢어진다. 22 또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담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가죽 부대를 터뜨려서, 포도주도 가죽 부대도 다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담아야 한다."


▧ 묵상을 위한 질문

1. 레위 마태는 어떤 사람이었는데, 예수를 즉시 좇았을까요?

2.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라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 본문해설

"팔레스틴에 있던 로마 관리 중에 세리보다 더 미움을 받은 자는 없었다. 외세에 의하여 세금이 부과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의 독립이 떠나갔다는 것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었으므로 유대인들을 계속적으로 자극하였다. 그리고 세금을 징수하는 자들은 단순히 로마의 압제의 도구가 아니라 자신을 위하여 사람들을 희생시켜서 치부하는 착취자였다. 로마 사람들의 지배 아래 이 직책을 맡은 유대인은 국가의 명예를 배신하는 자로 여겨졌다. 그는 배신자로서 멸시를 받았고 사회의 가장 비열한 계층으로 분류되었다.

레위 마태는 이 계층에 속한 사람으로, 게네사렛에서 부름을 입은 네 제자 다음으로 그리스도의 사업에 부르심을 받을 사람이었다. 바리새인들은 마태를 그의 직업에 따라 판단하였으나 예수께서는 이 사람의 마음이 진리를 받아들이기 위해 열려 있는 것을 아셨다. 마태는 구주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다. 자각시키는 하나님의 영이 그의 죄됨을 드러냈을 때에 그는 그리스도에게서 도움을 구하기를 갈망하였다. 그러나 그는 랍비들의 배척에 익숙해져 있었으므로 이 크신 교사께서 자기를 주목해 보시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세관에 앉아 있을 때에 세리 마태는 예수께서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았다. 자기를 향하여 “나를 좇으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그는 매우 놀랐다.

마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았다. 마태의 마음에는 주저함이나 의심도 없었고 이익이 남는 사업이 가난과 곤란으로 바뀌어지리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예수님과 함께 있어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사업에서 그분과 연합할 수 있다는 것으로 충분하였다. 마태를 불러서 그리스도의 제자 중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은 큰 분노를 일으켰다. 한 종교 교사가 직접 수종하는 자로서 세리를 택한다는 것은 종교적·사회적 및 민족적 관습에 위반되는 행위였다. 바리새인들은 백성들의 편견에 호소함으로써 여론의 흐름이 예수를 반대하기를 원하였다... 마태는 새로운 제자가 된 기쁨에 이전의 친구들을 예수께 데려오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기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친척과 친구들을 함께 불렀다. 세리들만이 포함된 것이 아니라 의심스러운 평판을 받고, 보다 철두철미한 그들의 이웃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던 많은 다른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예수께서는 세리들의 식탁에 귀빈으로 앉아 당신의 동정심과 사교적인 친절한 행위로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분의 신임을 받을 만한 사람이 되기를 갈망하였다. 갈급한 심령에 그분의 말씀은 축복과 생명을 주는 능력으로 임하였다. 새로운 충동이 일깨워지고 새 생애에 대한 가능성이 사회의 버림을 받은 이 사람들에게 열려졌다"(소망, 272-274).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18-22)

"유대인들은 금식을 공로가 있는 행동으로 실천하였다. 그들 중에서도 가장 엄격한 자들은 매주 이틀을 금식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라고 물었을 때에 바리새인들과 요한의 제자들은 금식 중이었다...하늘의 임금이 당신의 백성 가운데 계셨다.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이 세상에 주어졌다. 가난한 자들에게 기쁨이 되었으니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당신의 나라의 후사로 삼기 위하여 오셨기 때문이다...침례 요한은 구주를 바라보고 기뻐했다. 하늘의 주재 되신 분과 함께 걷고 말할 특권을 받은 제자들은 얼마나 기뻐할 기회를 가졌던가! 지금은 그들이 슬퍼하고 금식할 때가 아니었다. 그들은 흑암과 사망의 그림자 속에 있는 자들에게 빛을 비추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을 받아들이도록 마음 문을 열어야 하였다...

침례 요한의 기별은 유전과 미신으로 더불어 섞여서는 안 될 것이었다. 바리새인들의 가식을 요한의 헌신에 혼합시키려는 시도는 이들 사이의 간격을 더욱 분명하게 해줄 뿐이었다.

그리스도의 교훈의 원칙도 바리새주의적 형식과 결합될 수 없었다...그리스도께서는 낡은 것과 새 것 사이의 분리를 더욱 분명히 하셨다... 새 포도주를 담는 용기로 사용되던 가죽 부대는 얼마 후에는 말라 부서지기 쉽게 된다. 그리하여 다시 포도주를 넣는 데는 쓸모없이 되어버린다. 이 잘 아는 실례로 예수께서는 유대 지도자들의 상태를 나타내셨다.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관원들은 의식과 유전의 틀에 고착되어 있었다. 그들의 심령은 예수께서 비유하여 말씀하신 말라붙은 포도주 부대와 같이 위축되어 있었다. 그들이 율법주의적 신앙에 만족하는 상태에 있을 동안은 하늘의 산 진리의 위탁자가 될 수 없었다...사랑으로 행하며 심령을 정결하게 하는 믿음은 의식과 사람의 교훈으로 된 바리새인들의 신앙과는 결합할 여지를 찾을 수 없었다. 예수님의 교훈과 기성의 종교를 결합시키려는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었다. 발효시키는 포도주와 같이 하나님의 생명의 진리는 낡고 쇠해져가는 바리새인의 유전의 가죽 부대를 터뜨릴 것이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교훈을 필요로 하기에는 너무 현명하고, 구원을 필요로 하기엔 너무 의로우며,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존귀함을 필요로 하기에는 너무나 큰 존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구주께서는 하늘의 기별을 받고자 하는 다른 무리들을 찾기 위하여 그들에게서 돌아서셨다. 예수께서는 무식한 어부와 장터에 앉은 세리와 사마리아 여인과 당신의 말씀을 기쁘게 듣는 백성들 가운데서 새 포도주를 담을 새 부대를 발견하였다. 복음 사업에 쓰이는 도구는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빛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이런 영혼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진리의 지식을 세상에 전하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들이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새 가죽 부대가 된다면 그리스도께서 새 포도주로 그들을 채워주실 것이다"(소망, 278-279)..


▧ 적용

1. 세리 마태를 부르셔서 제자로 삼으신 것처럼, 주님은 오늘 나를 부르시지 않았는가?

2.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포도주를 담은 새 부대인가? 아니면 낡은 부대인가?


▧ 기도

세리를 제자로 부르신 예수께서 오늘 나를 불러주심을 감사하나이다. 낡은 마음은 버리고 새로운 주님의 사랑의 기별을 담는 새 가죽부대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