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막 9:1-13
변화산의 예수님(1-8)
1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오는 것을 볼 사람들도 있다." 2 그리고 엿새 뒤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으로 가셨다. 그런데,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의 모습이 변하였다. 3 그 옷은 세상의 어떤 빨래꾼이라도 그렇게 희게 한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4 그리고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더니, 예수와 말을 나누었다. 5 베드로가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였다. "랍비님,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초막 셋을 지어서, 하나에는 랍비님을,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겠습니다." 6 사실, 베드로는 무슨 대답을 해야 좋을지 몰랐던 것이다. 제자들이 겁에 질렸기 때문이다. 7 그런데 구름이 일어나서, 그들을 뒤덮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8 그들이 바로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없었고, 예수만 그들과 함께 계셨다.
수난에 대해 예고하심(9-13)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명하시어, 인자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셨다. 10 그들은 이 말씀을 간직하고,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를 서로 물었다. 11 그들이 예수께 묻기를 "어찌하여 율법학자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합니까?" 하니, 1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확실히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한다. 그런데,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할 것이라고 기록한 것은, 어찌 된 일이냐? 13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다. 그런데, 그를 두고 기록한 대로, 사람들은 그를 함부로 대하였다."
▧ 묵상을 위한 질문
1. 왜 예수님은 세 제자들을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셨습니까?
2. 예수님의 수난에 대해서 왜 침묵을 하라고 하셨습니까?
▧ 본문해설
변화산의 예수님(1-8)
"슬픔의 사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서 심한 부르짖음과 눈물로써 탄원하신다. 그분은 인류를 위하여 시험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를 기도하신다. 그분은 친히 전능하신 하나님을 새롭게 붙잡으셔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그분은 미래를 내다보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은 흑암의 세력이 엄습할 때에 제자들의 믿음이 약해지지 않도록 그들을 위해 간절한 마음을 토로하신다. 그분의 엎드린 몸 위에 이슬이 무겁게 내려앉으나 그분은 그것을 개의치 않으신다. 밤의 어둠이 그의 주위를 짙게 두르나 그분은 어둠을 개의치 않으신다. 그리하여 시간은 천천히 지나간다. 처음에는 제자들도 열성적으로 그분과 함께 기도하나 잠시 후에 그들은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그 일에 관심을 가져 보려고 애쓰다가 그만 잠이 든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의 고난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분은 함께 기도하도록 그들을 데려오셨으나, 지금도 그분이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계신다. 구주께서는 제자들의 암담한 심정을 아시고 저희의 믿음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보증을 하심으로써 그들의 슬픔을 덜어주고자 하셨다. 열두 제자들이 다 그분께서 주기를 원하시는 계시를 받을 수는 없다. 겟세마네에서의 그분의 고뇌를 목도할 세 제자들만이 그분과 함께 산에 올라가도록 택함을 받았다. 이제 그분의 기도의 요지는, 당신께서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하늘 아버지와 함께 가지셨던 영광을 제자들에게 나타나게 해 달라는 것과 당신의 왕국이 인간의 눈에 보일 수 있게 해 달라는 것, 그리고 제자들이 그 나라를 봄으로 힘을 얻을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신성의 나타나심을 봄으로 당신이 확실히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당신의 치욕적인 죽음은 구속의 경륜의 일부라는 것을 앎으로써 당신의 극심한 고뇌의 시간에 저들이 위로를 받게 되기를 간구하신다.
그분의 기도는 상달된다. 예수께서 바위 바닥에 겸손히 엎드려 있는 동안에 갑자기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도성의 황금문이 활짝 열려 거룩한 광채가 산에 드리워 구주의 몸을 둘러싼다. 내부에서 나오는 신성이 인성을 통하여 번쩍이고 하늘에서 임하는 영광과 교차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엎드린 자세를 일으켜 하나님과 같은 위엄으로 일어나신다. 심령의 고뇌는 사라진다. 그분의 용모는 이제 “해같이” 빛나며 그분의 옷은 “빛과 같이 희어”진다.
제자들은 눈을 뜨고 산을 두루 비취는 찬란한 영광을 본다. 두려움과 놀람으로 그들은 저희 주님의 광채나는 모습을 응시한다. 그들은 그 놀라운 빛에 견딜 수 있게 되자 예수께서 홀로 계시지 않은 것을 안다. 예수님 옆에는 예수님과 친밀히 이야기하고 있는 두 명의 하늘 거민이 있다. 그들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이야기한 모세요, 그리고 아담의 자손 중에 다른 한 사람에게만 허용된, 죽음의 권세에 굴복하지 않는 귀한 특권을 받은 엘리야이다.
변화산에 나타난 모세는 죄와 사망을 이기실 그리스도의 승리에 대한 증인이었다. 그는 의인의 부활 때에 무덤에서 나올 자들을 표상하였다. 422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변화되어 올라간 엘리야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지상에 살아남아 있을 자들, 곧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고전 15:51~53)게 될 무리들을 상징하였다.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두 번째” 오실 때에 나타나실 것처럼 예수께서는 하늘의 빛을 입으셨다. 이는 그분이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히 9:28; 막 8:38). 제자들에게 하신 구주의 약속은 이제 성취되었다. 산 위에서 미래의 영광의 왕국의 축소판으로 나타났으니 곧 그리스도는 왕이요 모세는 부활한 성도들의 대표자요 엘리야는 변화된 자들을 대표하였다"(소망, 420-422).
수난에 대해 예고하심(9-13)
"온 밤을 산에서 새우고 해가 돋을 무렵 예수님과 제자들은 평지로 내려왔다. 생각에 골똘한 제자들은 두려움으로 잠잠하였다. 베드로까지도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늘의 빛과 접촉하였던 곳, 하나님의 아들께서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신 그 거룩한 곳에서 즐거이 더 머무르고 싶었으나 벌써 원근에서 예수님을 찾고 있는 백성들을 위하여 할 일이 있었다.
산기슭에는 많은 무리가 모여서 그 곳에 머물러 있던 제자들의 인도로 이쪽으로 오고 있었는데, 제자들은 예수께서 어디에 가 계셨는지 알고 있었다. 구주께서는 가까이 가서 세 제자에게 저희가 목도한 것에 대해서 침묵을 지키라고 분부하면서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에게 보인 계시는 저희의 마음속에서 숙고할 것이요, 널리 공개할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무리들에게 말하면 조롱이나 쓸데없는 놀라움만 일으킬 것이었다. 그리고 아홉 사도들이라도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실 때까지는 그 광경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사랑받은 세 제자도 이해하는 데 얼마나 더뎠는지는 그리스도께서 당신 앞에 있을 일에 대해서 다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다고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고 저희들끼리 서로 물어본 사실로 알 수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께 설명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장래에 관한 그분의 말씀은 그들의 마음을 슬픔으로 가득 채웠다. 그들은 장래에 관한 계시를 더 이상 원하지 않았는데 이는 저들이 그 묵시의 성취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소망, 426-427).
▧ 적용
1. 예수님께서 변화하실 때에 함께 있었던 세 제자처럼 나도 예수님과 함께 천국의 환상을 나누는 친밀함을 갖는 제자인가?
2. 예수님의 고난의 신비를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는가?
▧ 기도
천국의 비밀을 확실하게 이해하게 하셔서 이 땅에서 겪는 모든 고난을 넉넉히 이길 힘을 주소서.
초막을 짓고 계속 머무르고 싶은곳!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하는 곳! 지금 이땅에서는 말씀과 기도가 있는 곳이 아닐까!?
말씀과 기도가 있는 거룩한 곳에 더 머무르고 싶어하는 가난한 마음이 많았으면 좋겠다.
거룩한 곳에 즐거이 머물렀던 그 힘으로, 넉넉한 마음으로 이 땅에서 겪는
어떤 어려움이라도 넉넉히 이기는 참됨 그리스도인이고 싶다.!
변화산에서 경험했던 제자들 처럼 저도 모든 것을 잊고 오직 하늘만 생각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그리고 더욱 더 예수님의 수난을 생각하면서 나의 죄를 혐오스럽게 생각합니다.
아버지 당신을 생각하면서 죄를 짓지 않게 해주세요
'저 장미꽃 위에 이슬' 3절에 '밤 깊도록 동산안에 주와 같이 있으려 하나 슬픈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는 구절이 떠오릅니다. 때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성도와 교제가 좋아서 그냥 거기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맛본 기쁨을 그 기쁨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하라고 하십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주장이 강하고 모난 품성들이 많아서, 그리고 관심사가 다르기 때문에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저런 사람도 예수님을 믿을까?" "저런 사람도 변화될까?"
그런데 그럴 때마다 과거의 저를 되돌아 봅니다. 저 같은 사람도 예수님을 참으로 믿게 하신 하나님, 저 같은 사람도 변화시키신 그 하나님께서 그들도 변화시키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다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사역에 지치고 낙심될 때 우리의 변화산의 경험은 그분의 품성과 그분의 약속을 명상함으로 조금이나마 맛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의 경험이 되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을 즐겨 할 수 있는 준비된 성도가 된다면
무엇이 두려우랴!
함께 예수님을 따른 12명의 제자들도, 기도의 밤을 함께 보낸 3명의 제자들도,
그 누구도 예수님의 길을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님의 길은 기도의 길이었다.
능력의 순간에도, 약함의 순간에도,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그 어떠한 순간에도 주님의 길은 기도의 발걸음이었다.
예수님의 길을 가려하는 나는,
그분의 길을 따라가고 있는지 되돌아본다.
그도 하나님으로부터 변화를 받았습니다.
변화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그에게 변화를 받아, 예수님과 함께 그 빛에 거하길 원합니다..
그 변화로 부터 기도가 나오며 감사가 나오며 사랑이 나오는 신학도가 되길기도합니다
오늘도 빛되신 예수님을 묵상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나는 눈으로 볼 수는 없으나 쓰여진 글과 그림 처럼 펼쳐지는 위의 글로 이미 경험한 듯하다.
눈으로 부활하시는 모습을 직접 보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 참 구주이심은 말씀과 기도 속에서 날마다 경험하고 느낀다.
예수님에 고난의 신비에대해서는 얼마나 잘 정리되어있는 글들이 많은가?
단순히 어린 아이처럼 받아들일 때 참으로 그분을 보게 된다.
그것은 고난인가 승리인가, 비웃음인가 영광인가...
예수님께서는 승리하셨고, 영광을 얻으셨다...
비록 십자가에 달리실 때 고난을 받으시고 비웃음을 받으셨지만 결국엔 예수님께서 승리하셨다...
우리 또한 주님과 같이 승리해야 한다. 영광의 그 날, 주님과 함께 나를 위해 준비된 하늘 본향으로 가야 한다.
우리를 위해 고난과 비웃음을 참으시고 승리와 영광을 주신 예수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이렇게 자신의 마음과 몸이 극히 심한 고뇌의 시간에 있을때에조차 오히려 제자들을 걱정하신 예수님,
그때와같이 나를 걱정하시는 예수님께 어찌 제 사랑을 드리지 않을수가 있을까요.
예수님의 모본을 따라서,
극심한 고난 속에 있을 때에라도 이웃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자그마한 고난 속에 있을 때에라도 누군가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한가지 알게된 사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보다 더 가치있는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죄인이 하늘나라에서 함께 살 수 있다는 사실에 온 하늘이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가기전에 이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변화산에서의 경험은 신학도라면 아니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면 다들 경험 하고 싶어하고
경험 해야 할 영적 싸움이다.
졸고 있을 지언정 그 자리에 있어야 하며 주님의 영광을 봄으로
우리의 말의 주제가 하나님의 영광을 빛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변화산은 어디인가 되어야 하는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이 세상의 변화산인가 아니면 주님이 계신 변화산인가 이다.
내 착한 성품이 주님의 변화산 안에서 변화 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그 자리에 참석하도록 노력 하여야 한다.
주님과 친해 지므로 우리가 변화 해야한다.
죄많고 미천한 이 죄인도,, 주님의 모본을 따라
남을 위하여 기도하려 합니다... 항상 저의 마음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영광에 눈이 먼 것이다.
하나님께서 신성을 감추시고
이땅에 오로지 고난의 면류관을 위하여 오셨다는 것.
갈보리의 십자가를 믿으면 그곳이 곧 나를 위한 변화산이다.
영광의 십자가를 지신 그분 ... 예수님...
변화산의 경험은 가지고 사는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지금 이순간도 나를 변화시키고자...친밀한 관계의 사이가 되고자
날 위해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따르고싶다...
작은 변화로부터 죽음이후의 궁극적인 변화에이르기까지
삶의 본질인 변화는
우리 각자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선택하는 모든 선택들이
자신을 변화시키는데 주저함이 없는 선택이기를
안주하고 두려움에 부정적인 근거에서 하는 선택이지 않기를
이땅에서의 어려움과 고난이 때로는 견딜수없을만큼의 무게로 다가오더라도
사람들이 볼때는 걸을수조차없을만큼보이는 좁은길이지만 그분의 길을 따라야겠다.
끊임없이 거룩함을 추구하여야만 한다....
거룩 그 자체이신 분과의 교제가 끊어지면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오늘 하루도 거룩의 기치를 높이 달고 살게 하소서~!!
말씀의 홍수에 있고 지식의 홍수가 있지만...
우리가 가려고 하는 곳에는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 알지못하고 가고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예배 드리며 기도 드리며 살아가지만 우리의 인생이 추구하는 신앙이 추구하는 진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믿음의 정로를 따라 걸어가자
오늘날 나는 믿음으로 인한 절망의 순간에 변화산의 예수님을 기억하고 있는가.
기억되어진 예수님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나의 가장 최악의 순간에 나는 영광으로 빛나는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는가. 나의 죽음의 순간에라도 믿음으로 붙드는 가장 희망적인 메세지가
내 안에서 믿음으로 예수님의 영광의 빛으로 빛나길 기도한다.
1. 변화산의 경험을 통해 변화를 갈망했던 3제자들의 갈망이 필요하다
2.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살았던 모세와 엘리야의 삶을 살아야 한다.
3. 변화는 다른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렵혀진 내가 예수님과 같이 희어지는 것이다.
갈망과 실천적행동 그리고 회개의 삶을 살아야겠다.
그것은 아마도 그들만이 그것을 볼 수 있는 준비가 될사람들일것이다.
나는 준비되었을까?
그 무리에 낄수 있는 사람인가?
부족하다.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를때가 많이 있다.
변화하고 주님께 나아가야 겠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그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신임이요 높은 영예인 것이다"(DA, 225)
모세와 엘리야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했던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의 영광에도 함께 참여하는 사람이 되었다.
오늘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의 의미가
영원한 삶을 위한 준비라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내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삶이 될 것이다
사랑하는 주님의 삶에 참여하는
하루하루의 삶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