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갈라디아서 4:21 - 4:31
계집종과 자유하는 여자(21-26)
21 율법 아래 있기를 바라는 여러분, 내게 말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율법이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합니까? 22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여종에게서 태어나고 하나는 종이 아닌 본처에게서 태어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23 여종에게서 난 아들은 육신을 따라 태어나고, 본처에게서 난 아들은 약속을 따라 태어났습니다. 24 이것은 비유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 두 여자는 두 가지 언약을 가리킵니다. 하나는 시내 산에서 나와서 종이 될 사람을 낳은 하갈입니다. 25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을 뜻하는데 지금의 예루살렘에 해당합니다. 지금의 예루살렘은 그 주인과 함께 종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26 그러나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종이 아닌 여자이며,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우리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임(27-31)
27 성경에 기록하기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여, 즐거워하여라. 해산의 고통을 모르는 여자여, 소리를 높여서 외쳐라. 홀로 사는 여자의 자녀가 남편을 둔 여자의 자녀보다 더 많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28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들입니다. 29 그러나 그 때에 육신을 따라 난 사람이 성령을 따라 난 사람을 박해한 것과 같이 지금도 그러합니다. 30 그런데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아라. 여종의 아들은 절대로, 종이 아닌 본처의 아들과 함께 유업을 받지 못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31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한 여자의 자녀입니다.
▧ 묵상을 위한 질문
1. 바울은 하갈와 사라 이야기를 무엇에 그리고 어떻게 비유하고 있습니까?
2. 바울이 주장하고자 하는 결론은 무엇입니까?
▧ 본문해설
계집종과 자유하는 여자(21-26)
아브라함의 두 아들은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났고, 다른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습니다. 바울은 이를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을 따라 났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이 여자들을 두 언약이라 하면서, 계집종인 하갈은 시내산과 지금 있는 예루살렘으로 종노릇을 뜻하고, 자유하는 여자인 사라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자유를 뜻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하갈과 사라 이야기를 현재 갈라디아 교회의 상황에서 재해석하면서 하갈과 그의 종 됨, 그리고 사라와 그의 자유자 됨을 강조합니다. 그리고서 이를 율법 아래에서의 종 됨,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함과 연결시킵니다. 이처럼 종노릇과 자유함은 율법 아래 있는 것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을 구별해 주는 뚜렷한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임(27-31)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과거 육체를 따라 난 이스마엘이 성령을 따라 난 이삭을 핍박한 것과 같이 지금도 그러합니다.그래서 바울은 성경이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아 그로 하여금 유업을 얻지 못하도록 한 것을 상기시킵니다.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라고 결론짓습니다.
당시 유대주의자들이 주장한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위에 율법적 행위를 더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몇몇 율법적 행위가 믿음을 대체하는 결과를 낫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이 가진 연약함이요 죄성입니다. 우리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로서 몇몇 율법적 행위가 아닌 참된 믿음을 실천하는 자로 서야 합니다.
▧ 적용
1.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을 얻어 누리고 있는가?
2. 나는 종의 자녀인 것처럼 살고 있는가? 아니면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로 살고 있는가?
▧ 오늘의 기도
율법 아래에서 종 됨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자가 되게 하시고,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로서 참된 믿음을 실천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kimss36@hanmail.net
두어 번 다시 찬찬히 읽어가며 곱씹어보았습니다.
분명한 차이를 인식하고 율법에 매여 종된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닌, 그리스도의 안에서 참된 믿음으로 자유를 즐길 수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참된 믿음을 실천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에 정말 공감한다.
정말 진실한 믿음을 실천하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살아가는 자녀가 아닌\
자유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어진 삶을 누리며 잘 살아나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서 당시 갈라디아지방에 있는 교인들은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라는 상상을 해봅니다.
아무런 오해없이 잘 이해했을까? 아니면 지금 나처럼 해깔려했을까??
그런데 분명한 것은 바울이 비유로 말했다는 것!!
나는 어디에 속한 자녀인가?
하갈의 자녀인가? 사라의 자녀인가?
여종의 자녀인가? 본처의 자녀인가?
내 신앙생활에 무엇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고 있는가?
내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쓰면서 살고 있는가? 아니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신경쓰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 바울이 기록한 비유를 통해 다시 한 번 내 신앙의 이유, 근거를 생각해 보고 나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예수그리스도를 향하게 합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이것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데 있어서
즉 종교심, 신앙심을 지니는 데 있어서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저는 신앙심에 기반을 두고서
진심을 가진다기 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그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은, 하나님과 나 사이의 하나의 끈끈한 관계가 성립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사귐에 있어서도 그러하듯이 하나님과 나의 닿음에도 형식적이고
관행적인 믿음이 아닌 진심으로 섬기고 진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율법이 아닌 참된 마음으로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그 감사를 하나님께 보답하도록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