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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일 수요일 - 예수는 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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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 15).


위 구절에서 예수는 민수기 21장 4~9절의 사건을 환기시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교인들이 모여서’ 가장 흔히 하는 일을 광야에서 자행했습니다. 즉 불평하며 투덜거린 것입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빠져나온 것을 후회했습니다.
기적적인 인도를 경험하고도 불신을 나타낸 그들에게 하나님은 그 대가로 치명적인 불뱀 떼를 보내셨습니다. 백성은 회개하면서 자비를 간청했습니다. 그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은 모세에게 뱀의 형상을 만든 다음 진영 한가운데 그것을 치켜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지시를 믿고 뱀을 쳐다보는 사람은 누구든지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이야기를 좋아했고 자주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절대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라고 명하신 하나님이 에덴 이후 사탄의 상징으로 각인된 뱀의 형상을 만들라고 지시하신 것입니다. 확실히 유대인들은 그 놋뱀을 성막 안에 보관하였고 이후 성전에서 거룩한 물건으로 간직하였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은 그 앞에서 백성들이 분향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 그것을 박살내 버렸습니다(왕하 18:4). 예수 당시 어느 유대인 저술가는 백성을 치료한 것은 놋뱀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주장했습니다(솔로몬의 지혜서 16:7).
그런데 예수님은 니고데모와 대화를 마무리하면서 다소 특이한 이 이야기를 꺼내어 중요한 요점을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니고데모와 나눈 다른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일종의 불가사의를 느낍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막대기에 매달려 있는 뱀을 감히 어떻게 비교할 수 있단 말입니까? 성경에서 뱀은 해결책이라기보다 문제가 아니었던가요?
예수의 말씀을 우리가 속속들이 다 이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가 전하고자 했던 뜻은 아주 명확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경험한 것처럼, 우리가 믿고 따를 때에 영적인 치유와 거듭남을 경험하고 마음과 삶에 성령께서 활동하시는 무대를 마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구원받은 자로 태어나 영생을 확보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마음 깊이 믿으면서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쳐다볼 때 영생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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