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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3일 화요일 - 위기 속에서도 평화로운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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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그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같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마 26:52~56).

드디어 유대 지도자들은 골치 아픈 예수를 손아귀에 넣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판을 살펴보기 전에 겟세마네 장면에 대해 좀 더 눈여겨봐야 합니다. 유다와 베드로 외에도 주목할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사람들을 파견한 사실입니다. 그날 사건으로 그들이 눈이 뜨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초자연적인 힘에 의하여 땅바닥에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은 귀 한쪽이 잘려 나갔습니다. 귀를 자르는 것은 쉽지만 그것을 다시 붙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그들은 초특급 기적을 목격했습니다. 늘 표적을 구하던 그들이 한꺼번에 두 가지 기적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마치 눈먼 사람처럼 예수님을 체포해 버렸습니다. 귀가 잘렸던 말고만이 그날 밤의 사건을 심사숙고했습니다.
둘째, 제자들이 거기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날 밤 사건으로 그들이 기대한 세계는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예수님이 여러 군단의 천사들을 불러 자신을 구조하게 하고 왕국을 세울 것이라고 제자들은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겁에 질려 우왕좌왕하게 된 그들은 목숨을 건질 방도를 찾기에 급급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어려움에 처한 주님을 버리고 맙니다.
셋째, 그 자리에 예수님이 계셔서 조용히 상황을 통제하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조금 전만 해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면서 격심한 고뇌를 겪었던 분이 어떻게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있었을까요? 마침내 자신을 완전히 내맡겼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면전에서 하나님의 뜻과 치열하게 씨름한 끝에 하나님의 뜻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 같은 굴복으로 평안이 임했고 그분은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사 53:7)처럼 되어 성경의 예언을 성취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는 것이야말로 예수님의 삶에서 찾을 수 있는 열쇠입니다. 일생일대의 위기 속에서 예수님이 경험한 평화를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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