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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7일 일요일 - 공격적인 비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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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마 22:1~12).

 

세 번째 공격적인 비유는 혼인 잔치의 비유입니다. 앞의 두 비유처럼 여기서도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을 배척한 사람들에 대한 심판으로 이야기가 끝납니다.
이 비유는 자연스럽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 부분에서는 유대 민족을 향한 예수님의 역사적인 초청을 다루며 예루살렘의 멸망을 분명히 암시하는 7절로 끝납니다. 농부의 비유에서 명시된 주제 중 상당수가 여기 다시 언급됩니다.
8절에서 비유는 유대인을 다루는 이야기에서 방향을 바꾸어 처음에 혼인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8~10절에서는 유대 민족에게 앞서 전한 복음의 초청이 더 넓은 이방 세계로 향할 것임을 예시합니다. 9절 앞부분의 명령은 마태복음 28장 19, 20절의 “그러므로 너희는 가라”라는 지상 명령과 평행을 이룹니다. “악한 자나 선한 자 모두”에게 초청의 말을 전하라는 명령은 그리스도의 전도 사역을 나타냅니다. 진정 복음은 누구나 혼인 잔치에 초청받는다는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혼인 잔치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아닙니다. 혼인 예복을 입으라는 임금의 지시에 순종해야만 합니다.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잔치에 부적합한 사람으로 판정받습니다.
혼인 예복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동안 많은 토론이 이루어졌습니다. F. D. 브루너가 바르게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이렇게 진술합니다. “마태복음의 문맥에서 혼인 예복은 수동적인 의(義), 곧 바울이 언급한 입혀 주신 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태가 5장 20절 이하에서 강조하는 활동적이고 도덕적인 의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마 7:21; 12:50 등). 제자 된 사람이 율법을 지킴으로 회개의 증거를 나타내는 것이다(3:7~10 등).” 이 해석은 구속받은 자의 깨끗한 세마포 옷을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명시한 요한계시록 19장 8절의 진술과도 일치합니다.
따라서 예수님과 맺는 진정한 믿음의 관계는 단지 그분을 믿는 일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까지 포함한다는 그분의 가르침을 또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지적으로 인정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믿음에는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 것도 포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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