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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5일 안식일 - 용서의 한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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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하늘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가리려는 왕에 빗댈 수 있다. 왕이 셈을 시작할 때에 만 달란트를 빚진 종이 불려 왔다. 그 종은 왕에게 돈을 갚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인은 종에게 아내와 자녀들과 가진 것을 다 팔아 빚을 갚으라고 명령했다. 종은 주인의 무릎 아래 엎드려 빌었다.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모든 것을 갚겠습니다.’ 주인은 그 종을 불쌍히 여기고, 풀어 주며 빚을 없던 것으로 해 주었다”(마 18:23~27, 쉬운성경).

490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만 듣고는 베드로가 요점을 파악하지 못할 것임을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 오늘의 성경절과 같은 이야기도 포함시키십니다.
무자비한 종의 비유(마 18:23~35)에서 주요 등장인물은 세 사람입니다. 임금(하나님), 믿기 어려울 만큼 큰 빚을 탕감받은 종(여러분과 저) 그리고 첫 번째 종에게 그렇게 많이 빚지지 않은 또 다른 종(우리의 이웃, 아내, 남편, 자녀, 교우)입니다.
이 비유에는 세 장면이 나타납니다. 우선 첫 번째 종이 임금의 방에 호출되었고 임금은 그의 큰 빚을 탕감해 줍니다. 그런데 그 빚은 그저 크다고 말할 정도를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즉 갚을 수 없는 빚입니다.
1만 달란트의 환산액이 얼마나 되는지 모를 때는 그 심각성이 잘 와 닿지 않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두매, 유대, 사마리아 세 왕국의 1년 예산을 합한 금액이 겨우 600달란트밖에 되지 않았고, 상대적으로 부유한 갈릴리 지역의 1년 예산도 300달란트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에는 1만 달란트가 얼마나 큰 액수인지 감이 잡힐 것입니다.
그가 “갚을 수 없었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사실이었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한 사람이 1만 달란트를 갚아 낼 길은 없었습니다.
여기서 비유는 인간의 논리를 들이댑니다. 채무자에게 응당 받아야 할 처분을 내립니다. 그러나 이같이 정당한 처벌을 받게 된 종이 무릎을 꿇고 임금에게 간청합니다. 시간을 허락해 주면 모든 것을 갚겠다고 합니다. 자신이 생각해도 안 될 게 빤한 이야기입니다.
그 순간 비유는 하나님의 논리를 전개합니다. 임금이 회개하는 종을 용서합니다. 여기 은혜가 등장합니다. 받을 자격이 없지만 필요하기 때문에 주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좋아합니다. 은혜의 빛 아래서는 마음 편히 잘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이 특별한 은혜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마땅히 그래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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