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땅에 싸움의 소리와 큰 파멸의 소리가 있으리라. 렘 50:22
버틀러는 갈라디아서의 율법과 다니엘 7장의 열 뿔에 대한 투쟁을 깨끗이 처리하려고 전쟁을 벌였다. 첫째 그는 엘렌 화잇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일련의 기사를 썼다. 둘째, 그는 갈라디아서에 대한 간략한 주석을 준비하였다. 그것은 사실상 85쪽에 달하는 <갈라디아서의 율법>이란 책으로 왜고너의 주장을 겨냥한 것이었다.
셋째, 버틀러는 1886년의 대총회를 이용해 존즈와 왜고너와 그들의 “거짓 가르침들”을 제대로 밝히고, 그로써 교단을 다시 정상 궤도에 올려놓을 생각이었다. 대총회 회장은 총회 참석자 전원에게 <갈라디아서의 율법>이란 책을 한 권씩 제공하였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제가 된 사항들을 단번에 일괄처리 하기 위해 하나의 신학위원회를 조직한 것이었다.
그러나 쟁점 사항에 대해 영구 불변의 신조 진술을 작성하여 진리를 확립하기 바랐던 버틀러의 희망은 좌절되었다. 9인 위원회는 5대 4로 양분되었다. 버틀러는 이렇게 보고하였다. “우리는 몇 시간에 걸쳐 논쟁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어느 쪽도 설득이 되지 않았다. … 그 다음 문제는 이 문제를 총회에 제출하여 거기서 싸움을 크게 벌릴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민첩한 정치인인 그는 그런 움직임은 대의를 더 불편하게 만들 뿐임을 알았다.
버틀러와 엘렌 화잇 두 사람은 1886년의 대총회를 “끔찍스런 총회”로 회고하였다. 버틀러는 그것이 자기가 일찍이 참석했던 모든 총회들 중 가장 슬픈 총회였다고 기록하였으나, 엘렌 화잇은 “예수께서 당신의 성도들과 함께 슬픔을 당하고 상하셨다”고 지적하였다. 그녀는 특히, “가혹함, 불손, 그리고 형제간 동정적 사랑이 부족함을” 볼 때 마음이 상하였다(편지 21, 1888, 원고 21, 1888). 미네아폴리스 총회의 변화의 양상은 이미 드러났다.
1886년 대총회의 최대의 희생자는 율법에 대한 버틀러의 입장을 굳게 지지했던 D. M. 캔라이트(Canright)였다. 그는 재림교회의 전통적 입장에 문제가 있음을 분명히 보았다. 그는 버틀러와 그의 친구들이 “율법을 그리스도보다 더 높이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 십계명이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한다는 왜고너의 견해를 수용하는 대신 재림 신앙과 율법을 모두 내버리고 교단의 가장 맹렬한 적대자로 변신하였다.
예수를 높이는 것 이상 더 중요한 주제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