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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당하는 일이 일반인 줄을 내가 깨닫고 심중에 이르기를 우매자의 당한 것을 나도 당하리니 내가 어찌하여 지혜가 더하였고 이에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이것도 헛되도다. . .지혜자나 우매자나 영원토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다 잊어버린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니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전 2:14-16, 3:19, 20.
영국과의 제2차 전쟁(18:12-14)에서 밀러가 대위로 복무한 것은 그의 삶의 전환점을 제공하였다. 이 전쟁 전에 이미 밀러는 이신론적 신조에 대한 의심을 품기 시작하였다. 이신론이 사후를 약속하였지만, 논리적으로 따져볼 때에 죽음 후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동시에 밀러는 자신의 죽음과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1814년 10월 28일 그의 아내에게 죽은 전우에 관하여 편지를 썼다. "스펜서처럼 나도 곧 없어질 것이다. 매우 엄숙한 생각이 든다."
삶의 엄연한 현실이 밀러를 한때 그렇게 맹렬히 반대했던 믿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에게는 한 가지 희망이 있었다. 만일 군대에서 참된 애국심을 찾게 된다면, 이신론을 믿은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말하였다. "군대에서의 2년은 이 점에서도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였다." 성경이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이 이신론이 말하는 것보다 더 정확하였다. 그 이신론은 인간 본성은 기본적으로 선하고 바른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밀러는 그런 주장을 역사 속에서 증명할 수가 없었다. "내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인간의 품성이 더 무섭게 타락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나는 과거의 역사 속에서 밝은 점을 볼 수 없었다. 세계의 정복자들, 역사의 영웅들은 인간의 모습을 한 마귀였다. . .나는 모든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 느낌을 갖기 시작하였다."고 밀러는 기록하였다.
이신론에 대한 밀러의 신념의 마지막 위기는 1814년 플라츠버그 전투에서 하나님이 개입하신 것처럼 보인 사건과 관계된다. 그 전투에서 미국의 "오합지졸"이 월등한 영국 정규군을 물리친 것이다. 영국군 중 어떤 이들은 최근 나폴레옹을 이겼던 사람들이었다.
미국이 질 것은 뻔하였다. "그런 확률 속에서 그렇게 놀라운 결과가 나타난 것은 사람보다 더 큰 능력의 역사처럼 내게 보였다"고 밀러는 결론을 내렸다.
전도서의 저자처럼 밀러는 삶의 엄연한 사실들 때문에 하나님을 다시 보게 되었다. 좋은 소식은 그 삶의 엄연한 사실들이 오늘날에도 동일한 기능을 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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