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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8일 월요일 - '참된' 포도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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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1~4).


신약 성경을 읽는 독자 대부분이 이 성경절의 충만한 힘을 놓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자신을 포도나무라고 하신 예수님의 주장에서 큰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이스라엘을 포도나무와 하나님의 포도원으로 거듭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사 5:7)라고 주장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내가 너를 순전한 참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다고 하신 말씀을 기록했습니다(렘 2:21). 시편 기자는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쫒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시 80: 8)라고 말합니다. 결과적으로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의 상징이 되었고 그들이 자유민이 되었을 때는 동전에 그 모양을 새길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포도나무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이스라엘 또는 유대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포도나무에 대한 구약의 가르침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포도나무와 일치시키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을 줄곧 타락과 연관시키고 있습니다. 포도원이 황폐했다는 것이 이사야의 요점입니다. 하나님이 심은 “귀한 포도나무”였던 이스라엘이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되었다고 예레미야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내가 참포도나무”라고 하신 예수님의 충격적인 주장에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습니다. 단지 이스라엘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포도원에 소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의 일부가 되려면 그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구절들을 검토하기 전에 영생의 길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 길이란 침례교도나 루터교도나 가톨릭교도 심지어 재림교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세주이시고 주님이시며 친구이신 예수님과 연결되는 것이 핵심입니다. 포도나무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우리의 삶과 목표가 주님의 삶과 목표와 온전히 일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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