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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8일 목요일 - 긴장에서 충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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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마 26:20~25).


수건을 두르고 자기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예수님 때문에 제자들이 놀랐다면 “너희 중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라고 한 예수님의 선언은 훨씬 더 충격적이었을 것입니다.
그 목요일 저녁이 되기 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가 죽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는 제자 중 어느 누구도 그 사건에 결부시키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자신의 측근 중 한 명이 자기를 팔아넘길 것이라고 처음 알려 주셨습니다. 열두 제자는 모두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마태복음 26장 22절에서는 그들이 “몹시 근심했다”라고 전합니다. 영어 번역에는 “몹시 슬퍼했다”(KJV), “크게 근심했다”(NEV), “깊이 비통해 했다”(NASV) 등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리스어 원문을 어떻게 옮기든지 간에 그 말은 격렬한 정서적 충격을 의미합니다.
이 폭로로 충격을 받은 제자들은 심지어 자기 자신을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제자들은 차례로 “주여 내니이까?”(한글개역)라고 여쭈었습니다. ‘아니다’라는 대답을 기대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새국제역 영어 성경에서는 한글 개역개정판의 번역처럼 “주님 나는 아니지요?”라고 번역했습니다(22절).
이 점을 생각해 봅시다. 분명 유다는 자신의 행적을 매우 주도면밀하게 숨겨 왔을 것입니다. ‘유다입니까?’라고 여쭌 제자가 아무도 없었다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유다 자신은 알고 있었습니다. 허점을 찔린 유다는 동료 제자들처럼 자신이 그 사람인지에 대해 예수님에게 곧바로 묻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남들처럼 그 질문을 하지 않으면 자기에게 의심의 눈총이 쏠릴 것이라는 데 판단이 미쳤습니다. 결국 그도 역시 “랍비여 저는 아니지요?”라고 여쭈었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여기서 다른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는 대신 ‘랍비’라고 부릅니다. 유대에서 이것은 선생을 부를 때 사용하는 호칭입니다. 마태복음에서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을 부를 때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호칭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제자들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유다에게는 그가 배반자가 될 것임을 알고 있다는 듯이 말씀하셨습니다. 그 순간 유다는 계획이 탄로 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또 계획을 성공시키려면 일을 신속히 진행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다고 요한복음에 언급된 때가 대략 그 시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다에게 하려는 일을 “속히” 하라고 말씀하셨고 유다는 자기 계획을 진행하기 위해 “곧 나가” 버렸습니다(요 13:27~30).
이 슬픈 이야기에도 교훈이 있습니다. 교회가 순결했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교회에서 교인 전체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었던 때도 없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교회 지도자마저 중도에서 넘어져 믿음을 저버리더라도 우리는 결코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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