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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일 금요일 - 전도에 관한 교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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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마 13:3~8).

비유에서는 늘 맥락을 살펴야 합니다. 마태복음 11, 12장에서 수많은 사람에게 배척을 받은 이후 13장에서 예수님의 교수 방법은 획기적으로 바뀝니다. 그뿐 아니라 비유의 내용도 크게 달라집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수년 뒤 마태는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한 가지 문제를 발견합니다. 어떻게 그토록 많은 사람이 메시아를 배척할 수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인의 종말론적 기대와 정반대가 되는 행태였습니다. 왜 일부 사람만 메시아를 받아들이고 대다수는 배척했을까요?
예수님의 답변은 네 가지의 흙에 관한 비유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원인은 하나님에게 있지 않다는 것이 그분의 핵심 강조 사항입니다. 그분은 모든 유형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지만 모든 사람이 동일한 방식으로 반응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비유에서는 두 가지 변함없는 요소가 각 상황에 나타납니다. 첫째, 각 토양에 똑같이 씨가 뿌려집니다. 모든 흙은 동일한 취급, 곧 동일한 말씀을 받습니다. 둘째, 네 가지 유형의 사람 모두 메시지를 듣습니다. 듣는 데 차이가 있지 않고 반응하는 데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따르는 자들이라는 점에서 네 유형 모두 잠재적인 제자들입니다. 잠재적인 가능성이 현실로 진행되느냐의 여부는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반응하는 것으로 판가름 납니다.
비유에서 예수님은 유형이 다른 네 가지 토양을 설정하고 있는데 그중 셋은 성숙한 경지로 성장하지 못하고 오직 한 가지 토양에서만 말씀이 결실합니다. 이 비유에서 두 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말씀을 듣고 믿음을 지키는 자가 절대적으로 소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들었던 사람뿐 아니라 오늘날 전도 현장에서도 이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둘째, 결실은 인간의 응답 여하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씨 뿌리는 비유가 초기 제자들과 우리에게 주는 전체적인 기별은, 결과가 미미하게 보인다고 전도를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책임은 말씀을 뿌리는 것입니다. 그 일을 계속해 나간다면 결과도 나타날 것입니다.
‘표면적인 성공 여부에 상관없이 계속 씨를 뿌리라.’ 이것이 마지막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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