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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 화요일 - 기독교는 토론 집단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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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요 3:4~9).

‘물’로만 침례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가족의 진정한 일원인 영적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과정은 무엇일까요? 그런 일은 어떻게 일어날까요?
니고데모도 똑같은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 역시 당황스러웠고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에 관한 가장 큰 신비 중 하나에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그 신비란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과정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좀 더 직접적으로 설명해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사실 그분은 일종의 언어유희를 통해 이미 요점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프뉴마’라는 헬라어를 사용했습니다. 프뉴마는 ‘영’을 뜻하는 동시에 ‘바람’을 뜻합니다. 새로운 탄생이란 바람과 같은 것이라고 예수는 니고데모에게 말씀합니다. 바람 소리를 듣거나 감지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어디에서 시작했고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 점에서 바람은 신비롭습니다. 바람은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지만, 그 영향은 모두가 목격할 수 있습니다. 성령 역시 이와 같은 방법으로 활동한다고 예수는 설명합니다. 성령이 어떻게 활동하시는지는 알 수 없어도 그 영향은 일상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성령이 일하시는 방법은 다 이해하지 못해도 그 결과는 알 수 있다는 게 예수의 설명입니다. 윌리엄 바클레이는 회심한 술꾼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술꾼의 동료들은 그의 새 믿음을 온갖 방법으로 조롱했습니다. 그들은 술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설마 자네가 기적 따위를 믿지는 않겠지? 예를 들어,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바꿨다는 이야기를 믿을 수 있겠나?’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수가 팔레스타인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꿨는지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예수가 내 집에 있는 맥주를 가구로 바꿔 놓았다는 것만큼은 알고 있네.’”
회심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고 예수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문제로 왈가왈부하느라 진전이 없는 교인이 많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기독교는 밑도 끝도 없이 논쟁만 일삼는 토론 집단에 불과합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고 예수는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경험되어야 하는 그 무엇입니다. 어떤 면에서 기독교란 성령으로 삶을 채우고, 삶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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