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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9일 월요일 - 냉수 한 그릇에 담긴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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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 10:42).

이 구절과 정반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위대한 일이란 주님을 위해 몹시 힘든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 말씀을 머릿속에 잔뜩 입력해 놓고 무슨 질문에든 척척 대답하는 것이 위대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교회의 예배를 바로잡거나 매일 오랜 시간 묵상하며 예수님을 만나거나 또는 전도에 진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위대함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우리 ‘자신’을 ‘큰’ 사업의 중심에 두고 있으며 핵심을 놓치고 있습니다. 앞에서 이미 확인하였듯이 진정한 기독교는 우리 삶에 예수님이 늘 거하셔서 사랑의 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일들은 우리가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에 따라 중요할 수도 있고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목마른 자에게 냉수 한 잔 건네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야말로 언제나 중요합니다.
예수께서 큰 계명이라고 가르친 두 계명을 서로 분리시키면 우리의 신앙 관념에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는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마 22:37)에는 열심이지만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는 일(마 22:39)에는 관심도 두지 않으며 삽니다. 심지어 우리가 보기에 옳은 일을 그들이 행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을 거칠게 또는 냉혹하게 대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각 시대마다 종교주의자들이 저지른 과오입니다. 그들은 종교의 외형에 대해서만 열을 올리고 실생활에서 해야 할 일은 잊고 삽니다. 그래서 미가 선지자는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라고 묻습니다. 그 대답은 제물을 많이 드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신 이런 대답이 돌아옵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6, 8). 또 야고보는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 1:27).
이 구절 중 “물들지 아니하는” 일에는 출중하지만 나머지 부분은 놓치고 사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거의 날마다 이 ‘물들지 아니한’ 바리새인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예수님이 냉수 한 잔의 신학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삶에서 실천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왕국에서 상을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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