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열린 마음의 낚시꾼은 오히려 자기가 그 낚시에 걸려드는 수가 있다. 하루는 매티슨이 하늘나라의 아름다움에 대한 뜨거운 설교를 들었다. 유럽의 다 죽어 가는 교회 분위기 속에서 자란 “그는 무엇이 산 믿음인지 전혀 몰랐었다.” 그 경험 이후 우여 곡절 끝에 그는 드디어 1859년 “숲 속에서 홀로 나의 구주를 발견하였다.” 개심 후 오래지 않아 그는 설교자가 되라는 부름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설교자가 되었으나 성경은 잘 몰랐다. 처음부터 하나님은 그를 축복하셨다. 그의 진지함에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따른 때문이었다. 1860년 그는 시카고의 침례교 신학대학에 입학하였고 1862년에는 침례교 목사로 안수를 받았다. 여기까지 좋았다. 그러나 그 다음은 더 좋았다. 1863년 그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별을 받아들였다. 그는 회중의 요구에 따라 자기가 발견한 새로운 믿음을 그들에게 기쁨으로 가르쳤다. 6개월 동안 재림교회 교리를 가르친 결과 한 가족만 빼놓고 모든 신도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신자가 되었다. 유능한 설교자인 매티슨은 미국 중서부 일대에 화란인과 노르웨이인 교회를 줄줄이 설립하였다. 그 후 1872년에는 그들의 언어로 된 잡지를 발간하였다. <재림 소식, Advent Tidende> 지는 영어 이외의 언어로 발행된 최초의 정기 간행물이었다.
이 잡지는 스칸디나비아로 보내졌고, 거기서 개심자들이 생겨났다. 다른 나라의 경우도 계속 같은 유형을 따랐지만, 새로 신자가 된 사람들은 즉시 미국에 선교사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왔다. 1877년 매티슨은 부름을 받아들였고, 그 후 11년에 걸쳐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에 교회를 설립하였다. 거기 있는 동안 그는 덴마크에 북미 밖 최초의 합회를 조직하였고(1880년), 역시 북미 밖 최초의 출판소를 설립하였다. 그는 사역 기간 중 총 2천여 명을 자기가 사랑하는 믿음으로 인도하는 실적을 올렸다.
매티슨의 삶은 성공적인 목사의 한 본보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