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행 13:3
사도 교회는 일단 일을 착수하면 신속히 진행하였다. 재림교회의 선교 사업도 그와 같았다. 1874년 8월 J. N. 앤드루즈를 “현실적으로 가능한 한 속히” 유럽으로 보내기로 결의하였다. 한 달 후 그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최초의 “공식” 선교사로 유럽행 선박에 몸을 실었고, 10월 16일 스위스에 도착하였다.
스위스에서 앤드루즈는 이미 안식일을 지키는 몇 개의 적은 무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체코우스키와 에르츠베르거가 수고한 결과였다. 앤드루즈는 그들을 만나 우선 교리를 철저히 강의하였다. 그 후 두 달도 못 되어 그는 프러시아와 러시아에 신자들의 무리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에 안식일 지키는 무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의 계획은 이 기존 그룹들을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들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알아냈을까? 그는 매우 특이한 방법을 사용하였다. 그는 “유럽에서 발행 부수가 가장 많은 신문사들”을 골라 안식일을 지키는 이들을 만나고 싶다는 광고를 실었다. 놀랍게도 결과는 아주 좋았다. 짧은 시일 안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스위스를 비롯해 영국, 스칸디나비아 및 독일에 선교 기지를 설치하게 되었다. 이 기지들로부터 재림교의 기별은 유럽의 모든 나라로 퍼지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새로 설립된 선교 기지에 파견된 사람들 중에는 이민 1세로서 미국에 들어와 개종한 후 모국으로 돌아가도록 격려를 받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그 나라의 언어와 풍습을 잘 알 뿐만 아니라 거의 예외 없이 친척과 친구들이 있어서 그들을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우리가 거듭하여 확인한 것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한 단계 한 단계씩 인도하신다. 재림교회 선교 발전의 제1단계(1844-1850)는 교리 체계의 완비를 위해 소요된 시간이었고, 제2단계(1850-1874)는 북미에 해외 선교 프로그램을 후원할 자금 기반을 구축한 기간이었으며, 제3단계(1874-1889)는 유럽을 비롯한 다른 “문명” 세계에 진출함으로 1890년 이후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한 기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