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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쫓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행 20:29, 30
1850년대 초기에 안식일 준수자들이 당면했던 중대한 문제는 소위 사기꾼들에 대한 조직적 방비책이 없다는 것이었다. 누구나 원하면 안식일 준수자들 모임에서 설교를 할 수 있었다. 자칭 목사라는 사람들 때문에 발생하는 위기 앞에서 재림신도 회중 절대 다수는 문제된 목사의 정통성이나 심지어 그의 도덕성마저도 알아볼 길이 없었다. 그 문제는 1850년대 말과 1860년대 초에 걸쳐 각종 교단에 속해 있으면서 밀러를 추종했던 모든 무리들 사이에 확실히 드러났다. 예를 들어, 제일일 재림신도들이 발행하는 잡지사 앞으로 온 한 불평객의 편지가 있었다. 내용인즉, 자기 회중은 1850년에 또다시 “거짓 교리로 보이는 가르침 때문에 애를 먹었는데, 그로부터 약 3주 후에 조셉 베이츠라는 사람이 마차로 이곳에 도착하여 재림을 전하는 목사라 하기에 … 그를 면접해보니 그의 기별은 안식일, 즉 제칠일 그리고 닫힌 문이었다.”는 것이다. 편집인 하임즈는 이렇게 답신하였다. “베이츠 선장은 우리의 옛 친구입니다. 우리가 아는 한 그 분은 자기의 동료들보다는 좀 나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가르침을 탐탁히 보지 않습니다. 잠시라도 그를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실상 한때 밀러주의자였던 사람들이 직면했던 문제는 경계가 어디인가라는 것이었다. 베이츠가 자유로이 제일일 회중들에게 와서 전도를 하겠다면 그들도 같은 방법으로 일할 수 있어야 된다고 열을 내었다. 그러나 사실은 우선 성도들을 재정적으로 우려 먹고 보자는 불성실한 거짓 목사들이 있었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었다. 1853년 안식일 준수자들은 회중들을 “거짓 형제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두 가지 조치를 취하였다. 첫째, 가장 명망 있는 안식일 준수 목사들이 주축이 되어 공인된 목사들에게 “어디서나 주의 백성들과 교제할 수 있도록 추천하는” 카드를 발행할 것. 둘째, 카드에는 이미 잘 알려진 목사들이 서명하고 날짜를 기록할 것. 존 러프버로우가 1853년에 받은 카드는 제임스 화잇과 조셉 베이츠가 서명한 것이었다. 안식일 준수자들이 사용한 두 번째 방법은 그들의 지도자에게 안수를 주는 일이었다. 1853년 말에 이르러 그들은 정기적으로 순회 목사들(지역 교회를 담임한 목사는 아직 없었다.)과 집사들에게 안수를 주었는데, 지역 교회에는 집사 이외의 다른 직분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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