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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3일 안식일 - 마리아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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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예수께서…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마 26:6~12).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상황에서 이 이야기는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배치가 잘못된 듯 보입니다. 마태는 유대 지도자들의 음모와 예수님을 배반하여 팔겠다는 유다의 제안 사이에,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붓는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끼워 넣은 듯합니다. 시간순으로도 이 이야기는 맞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2장에 의하면 여인이 향유를 붓는 사건은 유월절 6일 전의 일이었고, 예수님은 그 사건 다음 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단지 유다의 행동을 설명하려고 이 이야기를 마태복음에 포함시킨 것이 아닙니다. 그 반대로 마리아가 향유를 부은 사건 자체에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엄청난 헌신의 행위였습니다. 이것은 문맥상 앞뒤로 연결된 유대 지도자들과 유다의 태도와 현격한 대조를 이룹니다. 자신에게 엄청난 일을 행하신 분, 오라비 나사로를 죽음에서 되돌려 주신 분에 대한 사랑의 표시인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향유를 부은 사건에는 풍부한 상징이 담겨 있습니다. 무엇보다 메시아 또는 그리스도라는 말 자체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왕과 제사장들이 기름 부음을 받았듯이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어쩌면 향유를 붓는 이야기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마리아의 행위가 자신의 장례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예수님이 설명하신 부분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상황을 주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이 대목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통상 장례 절차에서는 사람이 죽기 전에 기름을 바르지는 않습니다. 죄수가 아닌 경우라면 전통적으로 기름을 바르는 일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시신에게 행하는 의식입니다. 따라서 마리아의 행동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을 보면, 자신의 죽음이 적절한 장례 절차도 거치지 않고 매장되는 죄수의 죽음과 같은 것임을 그분은 이미 꿰뚫고 계시는 듯합니다.
유다와 마리아의 이야기에서 결정적인 질문을 대면하게 됩니다. 우리가 선 곳은 어디인가요? 예수님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사심 없이 허비해 버린 마리아의 길인가요, 아니면 자기 욕구를 채우기 위한 도구로 예수님을 사용한 이기적인 유다의 길인가요? 이 질문에 정직하게 대답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 속에 유다가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마리아도 내재하고 있습니다. 둘 중 누구의 특성이 삶을 지배할지는 자신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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