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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9일 수요일 - 올바르게 질문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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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막 10:17, 18).

그가 예수님을 좇아가 만났다는 것이 무엇보다 인상적입니다. 그는 젊고 부자였다고 마태는 전합니다(마 19:20, 22, 23). 누가는 그가 법관이었다고 말합니다(눅 18:18). 예수님을 가장 힘들게 했던 사람들이 바로 이 계층에 속했습니다. 가난한 사람, 창녀, 세리들은 그분에게 몰려들었지만 종교계와 정치계의 유대인 지도자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남자는 단순히 온 것이 아니라 “달려”왔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 앞에 꿇어앉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얽매이지 않고 동료들의 비난을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 젊은이 말고도 지배 계층에 속한 부자 중 예수님에게 끌리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약간 다릅니다. 예컨대 니고데모는 “밤에” 비밀히 예수님께 왔습니다(요 3:2). 요셉은 빌라도에게 조용히 찾아가서 예수님을 장사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마 27:57, 58). 그들이 예수님께 달려와서 맨땅에 무릎 꿇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이 젊은이에게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열정이었습니다.
상류층 젊은이에게는 하나의 관심사가 있었습니다. 그 문제 때문에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구원에 관해 진지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영생을 유업으로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질문했습니다. 분명히 그는 행동을 종교의 열쇠로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왜 나를 선하다고 말하느냐”라고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라고 명시하셨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분명한 입장을 밝히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단순히 선생으로 여기는 것인지 아니면 ‘선하다’라는 말이 암시하는 것처럼 그분을 하나님으로 여기는지 말입니다. 그 젊은 법관은 이전에 예수님에 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예수님의 신원에 대한 결단을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는 그 문제를 확실하게 정리하라고 촉구하는 부드러운 압력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 비범한 젊은이를 접하면서 스스로에게 새삼 질문을 던져 봅니다. ‘예수님을 위한 나의 열정 지수는 어느 정도인가?’ 나아가 ‘나는 영생에 대해 진지하게 관심을 갖고 있는가?’ 오늘의 명상 주제가 될 좋은 질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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