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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5일 금요일 - 공격적인 비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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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여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뇨”(마 21:28~31).


 

이제 예수님께 남은 날이 얼마 없습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유대 지도자들과 대결 구도로 일관하십니다. 맨 먼저 그분은 환호 속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셨고 이어 성전을 정결케 하셨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권위 문제로 논쟁하셨습니다. 그분이 메시아임을 보여 주는 사건으로 인해 유대 지도층과 군중들 사이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배척한 반면, 대중은 그분을 열렬히 지지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예수님은 성전 뜰에서 가르치시고 대화하시면서 유대 지도자들을 염두에 둔 비유들을 제시하셨습니다.
첫 번째 비유는 아버지와 두 아들에 관한 것입니다. 세리, 창녀, 사회적 주변인을 대표하는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포도원에 가서 일하기 싫다고 말한 뒤 회개하고 아버지의 말대로 일합니다. 그런데 유대 지도자를 대표하는 첫째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겠다고 입으로는 동의하지만 행동으로는 아버지의 말을 거역합니다.
예수님은 놀라운 교수법을 사용하여 그분의 청중이 비유의 교훈을 이해하게 합니다. 대답은 분명합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은 “주여, 주여 하는” 자가 아니라 순종하는 사람입니다(마 7:21).
예수님에게 의로움이란 수동적인 수용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나는 순종입니다. 믿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렇다고 행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의 마음에서는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변화된 생활이 아니라 입술의 신앙을 추구하는 이른바 감성적 부흥주의 복음은 그분의 말씀과 대립합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교리적 진리를 믿는 것이 구원의 길이라고 가르치는 거짓도 이 비유에서는 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칭의의 순간과 구원을 똑같은 것으로 간주하려는 기독교계의 보증에 대해서도 일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구원의 보증은 그분을 받아들이는 것과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사는 것 모두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오늘 그리고 매일, 이 결론을 명령으로 삼아 전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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