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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 목요일 - 이해할 수 없는 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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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거가 참되다 기록하였으니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 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거 하시느니라 이에 저희가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연보궤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요 8:17~20).

요한복음 8장을 읽다 보면 법정에 참석한 기분이 들 것입니다. 심문받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한 독자도 있을 것입니다. 얼핏 보면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재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면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는 쪽은 오히려 유대 지도자들 같습니다.
간음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의 사건에서도 확실히 그런 양상이 나타납니다(요 8:1~11). 유대 지도자들은 맹렬하게 여자를 정죄했고 똑같은 열성으로 예수의 잘못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바닥에 무언가를 적었더니 그들은 부끄러운 표정으로 슬그머니 꽁무니를 뺐습니다. 예수님은 증거를 확보하셨습니다. 그분 말고는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주도권은 예수님에게 있었고 심판받는 것은 그들이었습니다.
12절부터는 또 다른 화제로 다시 심문이 시작되고 유대 지도자들이 달려듭니다. 자신이 “세상의 빛”이고 자신을 따르는 사람은 빛 가운데 거한다는 예수님의 주장 때문입니다. 그 주장대로라면 바리새인들은 어둠 가운데 있는 셈입니다.
이것을 빌미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공박했지만 실상은 예수님을 기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변호하는 모양새를 띠었습니다. 자신을 빛으로 자처한 예수님의 주장이 지나치다고 그들은 반박했습니다. 유대인의 통념상 그것은 하나님과 메시아에게 어울리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점에 대해 물러서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증거가 참되며 자신의 아버지가 두 번째 증인이라고 주장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상대를 수세로 몰았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은 예수님을 “가두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상황은 점점 그들이 바라던 대로 흘러갔는데도 말입니다.
왜 예수님을 체포하지 않았을까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요한이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말이었습니다. 그의 복음서 곳곳에서 예수님은 그분의 “때”를 향하여 나아가고 계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때가 이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에 모든 것이 준비되어야만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 속에서 행하신 일들을 우리는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섭리 속에서 항상 자신의 계획을 이행하고 계십니다. 그 섭리의 역사가 우리의 삶에서 날마다 일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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