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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일 화요일 - 거룩한 잘난 척은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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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리라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마 18:5~10).

이 구절에서 한 가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중의 약한 자들을 돌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리고 순진한 사람(5절의 ‘어린아이’)일 수도 있고, 초신자 또는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6, 10절의 ‘작은 자’)일 수도 있습니다.
5절에는 하찮은 어린아이를 영접하고 돌보는 데 대한 약속을 제시하고 있는 반면, 6절에서는 약속이 경고로 바뀝니다. 가르침의 주제 역시 처음에는 겸손이었다가 이내 ‘하찮은 신자’한 사람을 그리스도인 생활에서 떨어져 나가게 하는 잘못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구절의 전체적인 기별은, 연약한 그리스도인을 빗나가게 인도하느니 차라리 그 목에 연자 맷돌을 달아 물에 빠뜨리는 편이 낫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확실한 경고입니다. 그런데도 설교자가 교회에 방문하면 온갖 친절을 다 베풀면서, 행색이 초라한 교인에게는 좀처럼 안녕이라는 말 한마디 건네지 않을 때가 허다합니다.
교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거칠게 말하는 집사, 초신자가 준비해 온 안식일 점심 반찬이 자기 표준에 맞지 않는다고 대놓고 뭐라 하는 ‘성스러운’ 여집사, 의미를 찾으러 온 사람에게 장신구를 문제 삼아 생채기를 내고야 마는 ‘우월주의자’, 행동이 반듯하지 않은 십 대들을 경멸하는 사람 등 그런 이야기는 끝이 없습니다.
많은 이가 두 번 다시 교회를 찾지 않는 게 놀랄 일도 아닙니다. 그들의 ‘수호천사’(마18:10)는 여전히 그들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거룩한 잘난 척을 중단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할 때는 바로 오늘입니다. 어느 교회에나 존재하는 ‘작은 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그들에게 지금 사랑의 팔을 벌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품성을 바꾸시어 우리가 그들의 삶에 선한 감화력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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