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눼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창상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잠 23:29, 30
19세기 미국에서 일어났던 가장 괄목할 만한 운동들 가운데 하나는 절제 운동이었다. 이 운동의 목표는 술의 사용과 판매를 불법화하는 것이었다. 1825년 이 운동을 시작한 라이만 비처(Lyman Beecher)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목사였다. 그는 이렇게 외쳤다. “부절제는 이 땅의 죄악입니다.… 만일 인류의 희망을 꺾을 수 있는 것이 세상에 있다면… 그것은 술의 강입니다.” 비처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독주의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재림교회가 소년기를 맞이한 1870년대의 일반적 절제 운동은 노예 제도 폐지와 모든 주정 음료의 사용 금지를 포함하게 되었다. 신생 재림교회는 절제 운동을 지지하는 후보들에게 투표하자고 활발히 주장하였고, 엘렌 화잇은 이 문제에 대해 너무도 관심이 컸기 때문에 절제법안을 지지하는 후보들을 의회로 보내기 위해 안식일이라도 나가서 투표를 하자고 제안하였다.
전 미국은 물론 전세계에 걸쳐 재림교회는 음주 반대 운동을 돕기 위해 연사들을 소개하는 등 백방으로 협조하였다. 한 예로, 1874년 재림교회는 미국 서부 해안의 출판 사업의 본거지인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에 있는 135개 살롱들을 폐쇄하기 위한 일련의 집회에 대형 천막 두 개를 빌려준 일이 있었다. 그런 협조를 통해 재림교회는 “시장, 몇몇 성직자, 일간 신문사 한 곳, 몇몇 시민의 지도자들과 사업가들”과 실무적 협력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철저하게 조직된 집행위는 일련의 대규모 집회를 계획하였다. 이 집회들은 우리가 빌려준 고급 대형 천막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들이 밤낮으로 일한 결과 온 도시가 각성하고 동조하게 되었다.“
그 결과는 “영광스런 승리”였으며, 신문의 머릿기사에서는 재림교회의 공로를 어느 정도 인정하였다.
엘렌 화잇은 절제 운동에서 재림교회의 선봉에 섰고, 때로는 미국, 유럽, 그리고 호주에서 대규모의 비 재림신도 청중들 앞에 나서서 연설하였다. 1879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존 하비 켈로그의 지도아래 미국건강절제협회를 조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