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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3일 금요일 - 하나님의 혁명적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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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4~7).

예수님이 우리를 양이라고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양은 이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동물 중 하나입니다. 얼마나 둔한지 뒤뜰에서도 길을 잃어버립니다.
누가복음 15장의 첫 번째 비유에서는 길을 잃은 양을 소개합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비유는 잃어버린 양에 관한 것 이상입니다. 더 중요한 존재, 곧 목자에 관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길 잃은 양을 애타게 찾으시고 양을 찾은 뒤에 기뻐하는 하나님을 알려 줍니다.
이 하나님은 유대인의 인식 속에 자리 잡은 하나님과 다릅니다.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손과 발로 참회를 표현하면서 앞으로 나오는 죄인만을 받아들입니다. 죄인을 찾아 위험을 무릅쓰는 하나님을 그들은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 핵심이 있습니다. 구원은 결코 우리에게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옛날 에덴동산에서 죄인이 된 아담에게 그러셨던 것처럼(창 3:8~10), 하나님은 잃어버린 우리를 돕기 위해 먼저 움직이십니다. 엘렌 G. 화잇은 <실물교훈>에서 이 사실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잃은 양의 비유를 통해 가르치고자 하시는 것은 구원은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감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심으로 얻는 것이라는 점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가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회개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그분이 당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나타내신 것이다”(189쪽).
이 비유에서 중요한 말은 ‘기뻐하는 것’, ‘즐거워’, ‘즐기자’입니다. 네 구절을 통해 세 번 표현되고 있습니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기뻐”한다고 예수께서 설명하시는 7절은 그 절정입니다.
이 비유가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가르침에 맞선다는 것이 비유의 또 다른 핵심입니다. 그들은 “죄인 하나가 하나님 앞에서 없어지면 하늘이 기뻐한다.”라는 속담을 알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9장 54, 55절을 보면 제자들 또한 배은망덕한 사마리아 사람 얼마가 이 땅에서 사라지면 예수님이 기뻐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묘사한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해 자신의 안위를 돌아보지 않는 분, 잃어버린 자를 도로 찾았을 때는 즐거워 잔치를 베푸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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