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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3일 수요일 - 온유한 예수님의 또 다른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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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길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밖에 아무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마 21:18, 19). 

성전 정결 사건 직후에 무화과나무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이 처음에는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런 배열은 착오가 아닙니다. 이 점은 마가복음에서 특히 분명합니다. 마가복음에서는 무화과나무 이야기를 두 부분(11:12~14과 20~24절)으로 나누고 성전 정결 사건은 그 사이에 끼워 놓습니다(15~19절).
서기 5세기 교부인 안디옥의 빅토르는 마가복음의 가장 오래된 주석에서 이 연결 관계를 분명히 인식했습니다. 빅토르에 따르면 무화과나무가 마르게 된 것은 행동으로 보여 준 비유이며 여기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임박한 심판을 보여 주시기 위해 무화과나무를 이용하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른 무화과나무는 성전을 가리킵니다. 메시아의 구속 사역에 발맞추어 유대 백성을 준비시키는 데 성전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위해 성전을 통하여 온갖 일을 행하려 시도하셨지만 성전은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열매 맺는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나무가 찍히는 것처럼 성전도 같은 종말을 맞게 될 것입니다.
넓게 보면, 성취하지 못할 약속과 실천하지 않는 고백으로 점철된 모든 종교 종사자와 종교 기관에도 확대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 대상이 유대 민족이든 유대 지도자이든 아니면 일반 그리스도인이든, 표면적인 신앙 고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그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20).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19절).
하나님과 예수님의 온유와 친절에 집중하고 “어린양의 진노”(계 6:16)를 도외시하는 것이 요즘 그리스도인의 세태입니다. 분명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너무 늦기 전에 잠에서 깨도록 부르십니다. 결국 그분은 죄의 지배를 끝내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입니다.
열매 맺지 않는 무화과나무를 심판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언젠가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가장 권세 있는 재판관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열매”를 검증해야 할 날은 바로 오늘입니다. 정직해집시다! 겉모습뿐입니까 아니면 복음이 매일 깊이 자라고 열매를 맺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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