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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2일 안식일 - 재산에 대한 추가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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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마 19:21, 22).

이 성경절을 보고 잘못된 결론을 내리기가 쉽습니다. 젊은 부자 법관의 문제는 돈 자체가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청년 법관과의 면담에서 예수님이 지목한 정죄의 대상은 재물이 아닙니다. 니고데모, 삭개오, 기타 그분이 만난 재력가들에게는 그 청년을 대하듯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젊은이에게 재물은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재물이 그에게 우상이 되어 그를 하나님으로부터 차단시키고 있었습니다.
핼포드 루코크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예수님은 빈곤이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조건이나 이상이라고 가르치지 않으셨다. 그분은 선한 의사였으며 모든 환자에게 똑같은 약을 처방하지 않으셨다. 그 젊은 환자도 개인적인 애정으로 대하셨다. 특별한 처방이 필요한 사람처럼 사랑하셨다. 그를 사로잡고 있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행동을 처방하셨다. 그의 경우에 그것은 재물이었다.”
여러분이나 저에게는 또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동일한 요구를 채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바로 전적인 굴복입니다. 우리 존재와 우리가 지닌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킬 때 하나님은 진실로 우리에게 생명의 주님이 되십니다.
이 젊은 부자 법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또 다른 젊은 관원이 저의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둘의 반응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힘과 명망과 재산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제자가 되라는 초청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과거를 포기하기로 결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차이가 있었습니다.
바울을 볼 때마다 만약 젊은 법관이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은사를 사용했다면 어떤 사람이 되었을지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 청년은 자기를 위해 그 은사를 사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후에 사도 바울은 이 같은 인물을 염두에 두고 말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딤전 6:10). 하나님은 교회 역사에 걸쳐 재산을 바르게 취급하는 사람의 은사들을 활용하시어 그분의 사업을 유지하고 빈곤한 이들을 돕게 하셨습니다.
재물은 묘한 것입니다. 저주도 되고 축복도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은사가 다 그렇듯이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역시 전적으로 각 사람에게 달린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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