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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수요일 - 인생의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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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기념하리라”(마 26:13).

유다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은 그의 인생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인생을 결국 허비하고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나았을 뻔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대조적으로 성경이 ‘죄인’(눅 7:37)이라고 표현한 오늘 말씀의 주인공인 이 여인은 어떻게 신앙의 기념비가 될 수 있었을까요? 무엇이 두 사람의 인생과 신앙을 전혀 다른 길로 이끌었으며 무엇이 두 사람의 미래를 바꾸어 놓았을까요?

어제 유다의 사건에서 말한 것처럼 유다와 여인의 신앙 태도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인공인 이 여인은 자신의 소중한 옥합을 깨고 3백 데나리온의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와 발에 붓고 머리털로 그분의 발을 씻겼습니다. 그러자 유다는 이 여인을 비난하며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데 쓰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예수님은 유다의 합리적인 경제 논리보다는 마리아의 행위 그 자체를 주목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 여인을 괴롭히지 말라고 경고하시면서 이 여인의 행동을 선하고 좋은 일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이 여인이 실천한 아름다운 행위를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알려 복음의 기념비로 삼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이지 예수님은 이 여인의 행위의 중요성과 가치를 분명하게 확인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인생을 낭비하고 소모한 유다와 복음의 기념비가 된 이 여인의 인생과 신앙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유다는 예수님을 구주로 섬기지 않았지만 이 여인은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여 헌신과 복종을 표시했습니다. 유다는 진정한 사랑 없는 이론적인 신앙인이었지만 이 여인은 진정한 사랑의 실천가였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척했지만 이 여인은 예수님을 정말 사랑했습니다. 유다는 가식적 희생자였지만 이 여인은 온몸으로 희생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삶의 방편으로 삼았지만 이 여인은 예수님을 삶의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결국 유다는 두 마음을 품었지만 이 여인은 오직 한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멸망당한 인생의 낭비자가 되시겠습니까? 아니면 복음의 기념비가 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겠습니까? “복음이 전파되는 어느 곳에서든지 마리아의 선물은 그 향기를 발할 것이며 그녀의 꾸밈없는 행동을 통하여 심령들이 축복을 받을 것이다. …이 여인의 행동은 거룩한 역사의 페이지에서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시대의 소망, 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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