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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9일 화요일 - 비유5: 놀라움을 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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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로부터 복을 받은 너희들이여, 와서 세상이 만들어질 때부터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해 준비하신 나라를 물려받아라. 내가 배가 고플 때, 너희는 내게 먹을 것을 주었다. 내가 목마를 때, 너희는 마실 것을 주었다. 내가 나그네로 있을 때, 너희는 나를 초대해 주었다. 내가 헐벗었을 때, 너희는 내게 옷을 입혀 주었다. 내가 아플 때, 너희는 나를 돌보아 주었다. 내가 감옥에 있을 때, 너희는 나를 찾아 주었다.’ 그때, 의로운 사람들이 그에게 대답할 것이다. ‘주님, 언제 주님께서 배고프신 것을 보고, 우리가 음식을 주었습니까? 언제 목마른 것을 보고, 마실 것을 주었습니까? …언제 감옥에 있는 것을 보고…우리가 찾아갔습니까?’ 그때, 왕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한 일, 곧 너희가 이 형제들 중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한 일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마 25:34~40 ).

 
성경절에 나타난 물음표들을 보셨습니까? 비유의 결론으로 갈수록 더 많은 물음표가 보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놀라움의 연속임을 기본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놀라워하는 이유는 참종교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올바른 교리를 신봉하거나 특정한 예식과 생활 방식을 행하는 것이 종교의 핵심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구약의 위대한 한 구절에서 하나님은 미가를 통해서 이 점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분이 요구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나 예식적인 순종이 아니라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미 6:8)이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은 이 구절을 세 차례나 인용하셨고(9:13; 12:7; 23:23) 매번 참신앙에 대한 그릇된 이해를 지적하셨습니다. 신약의 다른 곳에서도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 1:27)라고 진술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 13:8~10; 갈 5:14)라고 설명했습니다. 
참신앙과 그 상급에 대해 마태복음도 침묵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 10:42)라고 분명하게 강조하셨습니다. 또 십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요약된다고 말씀하셨고 온전함이란 원수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라고 규정하셨습니다(마 5:43~48; 눅 6:36).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분은 행위 지향적인 젊은 부자 법관에게 만약 완전해지고 싶다면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며 그리하면 하늘의 보화를 상으로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 19:21).
교리와 생활 방식 또는 기도와 성경 읽기를 참된 종교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면 귀를 기울이십시오. 이런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결정적인 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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