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눅 2:41
초기 재림교회의 야영회는 즐거운 모임이었다. 사람들은 일상 생활을 벗어나 좋은 말씀을 듣고, 옛 친구들을 만나고, 재림교회 서적들을 구입하며 영적인 축복을 마음껏 즐겼다. 연례 야영회는 참석자들에게 연중 최고의 경험이었다.
1868년 9월 1일부터 7일까지 미시간 주 라이트에서 계속된 최초의 야영회는 그 이후 모든 야영회의 모델이 되었다. 두 개의 60피트 폭의 원형 천막은 집회장 구실을 하였고, 사람들은 그 주변에 설치한 작은 천막들에서 잠을 잤다. 요즘 같으면 K-마트나 월마트에서 싸구려 개인 천막을 사다가 썼겠지만, 당시는 <리뷰> 편집인들이 나서서 간단한 가족용 또는 교회용 천막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
교회용 천막은 모두 22개였다. 각 천막에는 담요나 홑이불로 칸막이를 하고 가족들이 약간의 프라이버시를 가질 수 있게 하였다. 어떤 천막은 한 가운데 빨랫줄을 매고 담요나 홑이불로 칸을 막아 남녀 칸을 구별하였다.
가족끼리 또는 친구들끼리 노천에 불을 지펴 음식을 준비하였고, 함께 앉아서 식사할 수 있도록 둥그렇게 놓은 통나무들은 훌륭한 교제의 자리가 되었다. 특히, 아이들의 기쁨이 대단했겠지만 야영회는 어른들도 연중 가장 고대하는 행사였다.
물론, 모든 것이 제 집만큼 편하지는 않았다. 프라이버시 문제도 만족스럽지 못한 점이 많았다. 먼 거리를 여행해야 하고 또 일을 쉬어야 하니 재정적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초기의 재림신자들은 그런 불편과 비용 부담에도 불구하고 야영회는 참석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 여겼다.
라이트에서의 야영회 이후 연례 야영회는 재림교회의 전통이 되었다. 그 다음 해에는 7개 주에서 야영회를 열었고, 그 이후로는 재림교회가 있는 곳이면 세상 어디서나 연례 행사로 치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