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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마 21:16
소년 설교자가 목사들을 두려워했으리란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 두려움은 러프버로우의 집회를 중단시켰던 목사가, 그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과 사적으로 모인 집회에 러프버로우를 찾아 왔을 때 현실로 다가왔다. “‘어제 저녁 집회 때 청중의 반응이 굉장하더군요.’라고 나이 든 목사가 운을 떼었다. ‘예, 관심이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라고 나는 대답하였다. ‘아마 그들은 소년이 설교한다니까 호기심이 많았겠지요. 그런데 어젯밤 내가 듣기로는 영혼 불멸을 부정하는 것 같던데, 그런가요?’ ‘예, 제가 그렇게 말했습니다만…’ 그 때 목사는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영원한 형벌, 결코 죽지 않는 죽음을 어떻게 설명하지요?’ 나는 그 말에 놀라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런 말씀은 성경에 없습니다. 목사님께서 하신 그 말씀은 절반은 성경에서, 나머지 절반은 감리교회 찬송가에서 나온 것이지요.’ 목사는 짐짓 정색을 하고 고집을 부렸다. ‘이봐요 내가 인용한 말씀은 성경에 다 있어요. 요한 계시록 25장에 다 있다니까요.’ ‘마태복음 25장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목사님이 말씀하신 본문의 절반은 거기 있습니다. 거기 보면 악인들이 영원한 형벌로 들어간다는 말씀이 있지요.’ ‘그건 그렇죠, 그러나 내가 인용한 말씀은 요한 계시록 25장에 나온다니까요.’ ‘그렇다면 그 본문은 성경을 한 석 장쯤 벗어나 있는 모양이군요. 요한 계시록은 22장이 마지막 장인 줄 아는데요.’ ‘당신의 성경을 이리 주시오. 내가 당장 펴서 보여 줄 테니.’ 놀랍게도 목사는 한참 동안 성경을 뒤적이더니 당황한 눈빛으로 성경을 돌려주며 다른 약속이 있어 실례한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이런 이야기를 우리는 재미 있게 읽을지 모르나 그것이 19세기 미국의 오지나 개척지 교회의 현실이었다. 당시 시골에는 독학으로 목사가 된 이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재림교회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환경이 그런지라 성경 실력이 말을 했다. 그 후 많은 것이 달라졌으나 성경 지식의 중요성만은 그대로 남아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이 주신 특별한 선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우리의 개명한 세대가 러프버로우 이야기에 나오는 목사나 별로 다를 것 없는 무지에 빠져 있는가. 매일의 성경 연구를 생활의 일부로 삼기 위해 오늘보다 더 좋은 기회는 다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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