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살아간 위대한 한 분이 94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셨다.

주님 오시는 동쪽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백성 동민(東民) 김관호 목사님

사회사업가로, 순회사경 목사로, 삼육대학교 총동문회장으로....

물려받은 재산으로 건축을 앞두고 있는 교회들을 위해 대지를 사준 곳만도 여러 곳

가난한 신학들을 위해 학비를 대주셨을 때 그의 도움을 받아 학위를 마치고

교회에서 섬기는 종들도 여럿

걸어다니는 성경과도 같은 분이 다음 세대에 교회를 맡기고 조용히 마지막 숨을 거두셨다.

 

다음은 002년에 쓴 글이다.

존경하는 김관호 목사님의 부음을 듣고 옛 이야기를 다시 올렸다.

 

1982년 2월 어느 안식일 오후였다.
그때 나는 신학과 3학년 학생으로
대방교회에서 김관호 목사님을 모시고 학생 전도사로 일하고 있었다.
은퇴를 며칠 앞둔 김관호 목사님과 함께 위생병원을 방문했다.

66세이신 김관호 목사님과 함께
86세이신 김봉덕 목사님을 문병하기 위해서였다. 병원 앞에서
76세이신 우필원 목사님을 만났다.
우 목사님께서도 김봉덕 목사님을 문병하기 위해서 오셨다.

순회전도 목사님으로 수고하시던 우필원 목사님과
순회사경 목사님으로 수고하시던 김관호 목사님은
함께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누셨다.

김봉덕 목사님의 병실에 들어섰을 때
두 목사님은 서로 권면을 양보하셨다.
김관호 목사님께서 먼저 입을 여셨다.
"형님께서 권면하시지요."
우필원 목사님께서 대답하셨다.
"아니오, 아우님께서 먼저하시지요."
"형님 먼저", "아우 먼저"를 반복하시다가
결국 연장자이신 필원 목사님께서 성경을 펴셨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앞으로 네개의 병실을 더 방문해야 하는데
우필원 목사님께서는 눈치도 없이
20여개의 성경을 속사포로 인용하시며
다음 병실에서 김관호 목사님께서 인용하실 성경절을 다 인용하셨다.

다음 병실로 옮겼다.
"이제는 아우님께서 권면하시지요."
"예, 그렇게 하지요."
환자를 위한 성경절 20여개가 이미 인용되었기에
김 목사님을 모시고 간 저로서는 다소 긴장이 되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우필원 목사님께서 인용하지 않으신 20여개의 새로운 성경절들을
거침없이 인용하시는 것이었다.
아, 승부가 나지는 않았어도 비기기는 하겠구나!

그날 오후는 정말 멋있는 한판의 대결이었습.
다음 병실을 방문한 우필원 목사님께서
또 다시 이제까지 인용되지 않은 성경절을 15개 정도 인용하셨고
다음 병실에서는 김관호 목사님께서
이제까지 인용되지 않은 성경절을 15개 정도 인용하셨다.

안식일 오후 내내
두 원로 목사님을 모시고 다섯 개의 병실들을 방문하면서
신학과 4학년을 앞두고 있는 신학과 3학년 학생이
성경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두 분 은퇴 목사님을 통해서 너무나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두 어른 모두 입을 열면 성경절로서 말씀을 꿰면서도
얼마나 겸손하고도 진지하셨던지.....

이제 두 아들들도 모두 신학을 마치고 신학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옛날에 비해서는 많이 부드러워진 신학생들을 보면서
옛 생각이 나서 기억을 더듬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