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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선교사 열전 (From Jerusalem to Irian Jaya) (인물중심의 선교역사)
지은이 : 루스 터커(Ruth A. Tucker), 박해근 옮김
출판사 : 크리스찬 다이제스트
책값 : 22,000원

선교사로 지원한 뒤 1년동안 준비의 기간 동안 어떤 분의 추천으로 읽은 책입니다. 선교사의 사역을 3년간 한 뒤 다시 읽은 이 책으로 많은 감동을 받고 또 새로운 다짐을 하게 한 책입니다.
이미 30년 전 쯤에 쓰여진 책이지만 여전히 감동과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한국에선 2007년에 재판이 되었었네요.
해외 선교사들의 영웅적인 모습만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연약함과 인간적인 모습까지 함께 다루고 있으며, 사도바울로 부터 시작하여 현대의 선교사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교단(재림교회 선교사의 이야기도 있음)의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제가 있는 바로 이곳 근처 옆동네에서 헌신하던 선교사의 이야기도 있더라구요.
혹시 절판이 안되었다면 여러분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아래는 이 책의 맨 마지막 부분에 있는 글쓴이의 후기를 옮긴 것입니다.

    회고컨대 기독교의 해외선교에서 우리가 가장 감명을 받은 것은, 우없이 많은 남녀 선교사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기 위해 사랑하는 고향과 가족들을 떠나 위협과 절망과 죽음의 땅으로 기꺼이 가서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떠나게 한 것은 꼭 무엇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선교사 소명"이었다. 국내 목회는 "소명"없이 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해외선교사는 소명없이는 할 수 없다. 희생의 댓가가 너무 엄청나기 때문이다. 선교사를 선교지에 머물러 있도록 해준 요소도 다름 아닌 소명이었다. 그러나 최소한 그들은 떠났으며, 많은 경우 선교사역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고향에 머물러 있는 것보다는 행복을 느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10년 또 10년을 소명에 붙들려 묵묵히 걸어갔던 것이다.
   그런 고귀한 소명에 붙들려 살았던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특별히 뛰어났던 사람들이었는가? 아마 아닐 것이다. 그들은 교회 내의 다른 열성적인 신자들보다 특별히 나은 것이 없었다. 선교사들과 선교회의 역사는, 인간적 약점과 실패와 역경에 가득찬 무용담일 뿐이었다.
    "위대한 세기"가 열리기 전에 나타는 "현대선교의 아버지"는 싫어하는 아내를 억지로 이끌고 회의적인 처제와 함께 선교지에 나타났다. 본국에서의 불행한 가정생활은 기독교인 가정의 이상적인 모습과도 거리가 멀었다. 후에 인도의 세람포 선교본부에서 선후배 선교사들간에 벌어진 다툼은 오히려 기독교 선교에 큰 장애가 되었다.
    인도에서만 선교사들이 그리스도의 명예를 훼손시켰는가? 중국에서 기독교는 아편밀수의 앞잡이로 생각되었다. 아프리카에서는 인종차별, 신구교 분쟁과 관련되었으며, 태평양의 섬들에서는 선교사들끼리 간통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리고 전세계에 있는 대부분의 선교회들은 토착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우를 범했고 제도화된 서구교회 출신 선교사들은 개종자들에게 무조건 자신들을 따르라고 잘못 가르치기도 했다.
    물론 현대학자들의 면밀한 재조사 결과 어떤 잘못은 우연한 실수였고 어떤 경우에는 충분히 용납할 만한 것이었다. 그런 잘못들은 땅 위에 넘쳐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무시할 수 있는 잔물결일 수 있다. 그러나 선교의 전성기 때 선교에 대한 비난이 이는 것도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다. 선교사들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비난받을 만한 일을 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교사들이 우리가 하는 실수와 잘못을 범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선교사들은, 지지자들이 흔히 생각하듯 위대한 성인도 아니고 위인전에 쓰여진 것처럼 오류가 없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만은 아니다. 그러나 어쨌든 선교사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대개는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다.
    선교사역의 결과로 비서구 세계에 기독교가 퍼져나난 것은 역사상 가장 큰 성공에 속한다. 종교개혁을 거치고 대각성운동으로 힘을 얻은 뒤, 합리주의와 세속화의 반발을 이겨내고 프랑스 혁명과 나풀레옹의 침략을 격은 후 기독교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룩하여 세계적인 종교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러한 팽창력의 원동력은 살아있는 신앙심이었다. 기독교만큼이나 더 넓게 뻗어나간 인간의 사상은 일찍이 없었다.
    이 놀라운 업적을 연약하고 죄인인 인간들이 부족한 후원을 받으며 이룩했다는 사실을 살펴볼 때 우리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적인 관점으로 보자면, 자신들의 출세와 야망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따른 많은 선교사들을 존경하고 이상화시키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 중에는 헨리 마틴과 헬렌 로즈비어도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헌신하겠다는 단순한 마음으로, 결혼과 가족과 본국에서의 좋은 자리를 거절하고 고통과 낮아짐을 택하였다.
    선교를 논할 때 선교사로 헌신하지 못하고 본국에 남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나간 선교사들과 마찬가지로 소명을 받았고 똑같은 희생을 하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그들은 영적이지 못했기 때문인가? 우리가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는 점은 어떤 사람은 나갔고 어떤 사람들은 남았다는 것 뿐이었다.
    한 사람이 선교사로 나갔다면, 비록 감깐 동안 나갔다 할지라도 선교사로 나간다고 하나님께 약속해 놓고 나가지 못한 사람은 최소한 50명 이상이 넘는다고 한다. 왜 그들은 선교의 비젼을 실천하기 못했을까?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틀림없이 약속을 잊어버린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국에서 귀중한 역할을 담당한 사람도 있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본국에 머문 사람들"없이 선교회들이 어떻게 활동할 수 있었겠는가? "프린스턴 서약"(Princeton Pledge)에 서명한 10만명의 학생 자원자 중에서 실제로는 겨우 2만명 정도가 선교사로 나갔다.- 그러나 남아있는 사람들의 후원이 없었다면 어떻게 선교사역을 감당했겠는가? 그 기간동안 선교회에 들어온 헌금이 4배가 넘었다. 19세기 말에 시작된 해외선교의 뒤에는 많은 여성들의 헌금이 있었다. 해외에 나간 한 사람의 여성 선교사의 뒤에는 최소한 12명 이상의 선교헌금 후원자가 있었다- 그들 중에서 많은 사람이 선교의 비젼을 느끼고도 나가지 못했던 사람들이었다.
    최근 수십년 동안 "본국에 머물러" 선교의 정신으로 헌신한 학생운동들이 있었다. 스테이시 우즈(C. Stacey Woods)는 1934년에 인도에 갈 계획을 세웠으나 결국 미국에 머물고 말았는데 대신 국제 기독학생회(InterVarsity Christian Felloship: IVF)운동을 주도하였다. 그 학생선교단체는 대학교의 학생 신앙운동을 통해 선교에 크게 공헌했다. IVF는 또 매 3년마다 우르바나 선교대회(Urbana Missionary Conferences)를 갖는데 5일동안 미국 전역에서 17,000명의 학생들이 모여 선교의 비젼을 다진다. 스테이시는 국제 복음주의 학생회(International Fellowship of Evangelical Students)를 조직하여 해외선교 운동에 크게 기여했다. …..
    오늘날 선교회의 지도자들은 "나가는 선교사"와 "보내는 선교사"의 구별을 명확하게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단기 선교사의 출국도 늘어나고 있다…. 그들 중에서는 단기간의 사역만 하는 사람도 있고 평생 선교사로 헌신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해외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가? 그들의 일생은 어떻게 평가되겠는가? 그들은 본국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지상명령을 완수하지 못했는가?
    그들에게 "선교의 소명"이란 쓸데없는 것인가? 왜 그렇게 많은 청년들이 "선교의 소명"을 받고도 곁길로 빠지는 것일까? 그들은 하나님의 소명에 불순종한 것인가? 모든 사람은 제각기 하나님 앞에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솔직하게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 선교의 "소명"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필요할 것이다. 외국의 사역지에 나가 미완의 사역(Unfinished Task)을 해보고 싶다는 것은 평범한 선교의 소명이다. 그러나 미완의 사역은 그런 선교의 소명을 느낀 사람들이, 극내와 해외에서 모든 것을 드려 헌신할 때 완성할 수 있다. 그리고 선교의 소명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은 이제 죄책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국내에서나마 선교의 사역을 이루기 위해 최상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해외에 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극적인 이야기이며, 국내에 남아있는 사람의 이야기보다 더 감동적일 것임은 의심할 바 없다. 그러나 남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우리는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데, 때로는 이들의 이야기는 해외로 나간 사람들에 못지 않다.
이러한 사례 가운데 1950년에 북 위스콘신에서 있었던 이야기가 있다. 어느 여름 성경학교 시간에 C&MA의 선교사였던 델머 스미스(Delmer Smith)가 해외선교에 대한 감동적인 설교를 하였다. 천막속에서 그의 설교를 듣고 13세의 한 소녀가 선교사가 되어 하나님께 헌신하겠다고 서원했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해외선교의 비젼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어떤 것도 그녀에게서 선교의 비전을 단념시키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그녀는 여러가지 일에 분주하였다. 성경대학, 기독교 예술협회 활동, 대학교, 결혼, 가정, 교수. 잇따라 해야할 일이 꼬리를 물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선교사가 되어 외국에 가겠다는 그녀의 꿈은 더욱 현실과 멀어졌다.
   그녀가 어렸들 때 집에서 4.5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그녀의 사촌인 발러리 스텔레치(Valerie Stellrecht)란 소녀가 살았다. 그들은 똑같은 학교와 교회를 다녔다. 발러리 역시 해외선교의 소명을 느끼고 헌신했다. 그녀 역시 선교사의 사역의 준비를 위해 성 바울 성경대학에 입학했으며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갖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녀는 무엇보다 해외선교의 비젼을 앞세웠다. 발러리는 성경대학을 마치차마자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 에콰도르로 가서 오늘날까지 C&MA선교사로 사역하고 있다.
    두 여자의 일생은 놀랍도록 비슷했다. 두 쳐녀는 똑같이 해외선교의 소명을 느꼈다. 발러리는 갔지만 한 사람은 이렇게 남아 이 책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