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아침 예배를 마치며 슬픈 소식을 들었다.

전 한국연합회장 심태섭 목사님의 부음이었다.

소식을 듣는 순간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내가 그분을 처음으로 뵌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 1970년, 침례를 받으면서였다.

당시에 심태섭 전도사님은 중한대회 청소년부장이었다.

사람들의 심령을 재치있게 울리는 위트 넘치는 설교, 우렁찬 찬양, 발군의 톱연주....

무엇이든지 못하는 게 없는 그분은 타고난 청소년 지도자였다.

 

나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며

일주일에 두 번씩 대회 사무실과 성경통신학교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통신학교에서는 채점을 하고 봉투를 쓰고 발송하는 일을 도왔다.

대회에는 지금처럼 여러 명의 서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각부 서기라고 해서

모든 부서가 한 명의 서기를 쓰고 있었는데 박상현 목사님께서 실명하신 후에 사모님께서 각부 서기로 일하셨다.

매주 자원봉사를 한다고 해서 누가 점심을 사주거나 봉사에 대한 사례를 하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함께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혼자 시간을 보내며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일했다.

학교가 있는 마장동에서부터 통신학교와 중한대회가 있는 회기동까지의 거리는 3km 정도여서 한 시간 안에 걸을 수 있는 거리였다. 서너시간 봉사를 마친 다음에는 청량리 역에서 기차를 타고 의정부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당시에 새로 신앙을 하면서 가정과 학교에서의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월요일마다 학교 게시판에는 지난 토요일에 아니 정기적으로 토요일에 결석하는 학생의 이름이 등교 정지처분자라고 붙어 있었고, 기독교 계통의 학교여서 여러 명의 교목들이 아무개가 다니는 교회에는 다니지 말라는 광고도 계속 되었다. 집에서는 성실하던 아들이 정기적으로 일주일에 한번씩 결석하는 일에 대해서 염려가 극심하셨다. 매주 토요일 밤마다 교회에서 철야를 하며 기도를 드려도 인간적인 위로가 필요할 때가 있었다. 그때 항상 다독거려 주신 분이 심태섭 전도사님이셨다. 아마 그분의 손위로 떨어진 나의 눈물은 한 컵은 못되어도 적지 않았다.

 

어떻게든지 졸업만 하면 대회의 장학금을 주어 신학을 하게 해주겠다고 교육부장을 겸했던 심 목사님은 격려해주셨다. 대회장학금은 약속을 받았지만 결국은 등록금 미납이란 사유로 고등학교 졸업이 취소가 되어 나쁘지 않은 성적과 예비고사 합격증을 받았음에도 진학을 하지 못했다.  신학과 입학은 그로부터 7년이 지나서였다.

 

병역을 마치고 고등학교 졸업자격을 갖춰 어렵게 신학과에 입학했지만 생활이 쉽지 않았다. .그때 연합회 청소년부장으로 일하시던 목사님께서 부르셔서 청소년 기도력을 번역하게 하셨다. 1년 분을 한 달 안에 번역하라고.... 하나님의 은혜로 "천연계와의 대화"가 출판되었고, 그때 주신 번역비로 영문 예언의 신 전체를 살 수 있었다.

 

심 목사님께서 원동지회의 부름을 받고 싱가폴로 떠나실 때 부족한 사람을 시켜 설교원고를 번역하게 해주셨다.

 

미국에서 유학하는 동안 김상래 목사의 후임으로  서북시카고 교회를 3년 동안 섬겼다. 그동안 AIIAS 신학대학원장 이재룡 목사님이 1000명선교사 운동을 시작하셨다. 그분을 도와 일할 사람을 연합회가 파송하게 되었다. 당시에 연합회장이던 심태섭 목사님께서 홍명관 목사님을 통해 부르셔서 미국을 떠나 1000명선교사운동을 섬기게 되어 선교에 눈을 뜨고 그 이후로 이제까지 선교와 관련된 일을 섬기게 되었다.

 

두 아들이 신학을 하고 군입대를 하고 유학을 하게 되었다. 아비가 목사이긴 하지만 어느 목사님이시든지 아들의 유학과 입대를 위해서 특별히 기도해주시기를 기대했으나, 격무에 시달리는 지역교회의 목사님은 아들들이 유학을 가도 군입대를 해도 방문을 해주시지 않았다. 아들을 그냥 보낼 수 없어, 과일 한 상자를 예물로 사들고 은퇴를 앞두고 회기동본부교회에서 마지막 사역의 불꽃을 불태우시는 심태섭 목사님을 찾아가 축복의 기도를 부탁드렸다. 아비가 군에 입대할 때에 손을 붙들고 기도드려주셨던 분이기에 그렇게 했다.

 

말씀과 소명의 사람, 항상 쾌활하고 긍정적인 삶을 사시던 심태섭 목사님, 백수(百壽)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분이 심 목사님이실 줄 알았는데 어느날 병을 얻어 갑짜기 떠나셨다. 한 달 전, 은퇴 목사님들의 모임인 성우회 회장으로 어른들을 이끌고 지회를 방문하셨을 때만해도 이렇게 빨리 떠나실 줄은 몰랐다. 많이 연약해지신 하셨지만 손을 꼭 잡으시며 끝까지 충성하지고 하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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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줄 가운데 앉으신 분이 심태섭 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