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은 양의 캄보디아 일기 ... ‘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오늘도 몹시 더울 모양이다. 이른 아침부터 뜨거운 햇살이 내려쬐기 시작한다. 거울 앞에 서서 연신 선크림을 발라보지만 그 안에 비친 검게 그을린 나의 모습은 ‘이제 그만 포기하시지. 그래 봤자야’라고 비웃는 듯 하다.

준비할 때 빼먹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는 우리의 점심식사다. 가난한 캄보디아 가정에 숟가락 하나를 더 올려 놓는 일이란 버겁기만 하다. 한 지역에서는 우리를 대접할 마땅한 음식이 없어 목사님께 돈을 받아 라면 3개를 사가지고 와 끓여준 적도 있다.

현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라면을 먹는데 얼마나 그분들께 미안하던지. 나도 저분들과 같이 굶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에 라면 맛은 느끼지도 못한 채 꾸역꾸역 넘겼던 기억이 난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우리는 그들에게 최소한의 부담이라도 되지 않기 위해 빵이나, 과일 그리고 열심히 그곳에서 봉사하고 있는 church planer에게 줄 작은 수박하나도 꼭 챙긴다.

집을 나서자 작고 귀여운 차 한 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 차에 타는 순간부터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과 점점 가까워진다. 차가 캄보디아 시내를 빠져나가면 비좁던 포장도로가 사라지고, 흙먼지 길이 시작된다. 우기가 시작되면서 도로사정은 더 나빠졌다. 길은 띄엄띄엄 웅덩이를 만들었습니다.

‘덜컹 ... 덜컹’
얼마가지 않아 나도 모르게 온 몸이 흔들리고 위아래로 정신없이 움직인다. 웅덩이에 고인 흙탕물에서 마냥 해맑게 웃으면서 물놀이를 즐기는 꼬마들의 모습도 보인다.
                            
그렇게 40분을 달려 도착한 San Sok 지역. church planer와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고 바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찾아 걸어 나간다. 넓은 밭을 지나 좁은 골목길이 나왔다. 나무와 나뭇잎을 얼기설기 엮어 만든 집들은 작은 바람 한 점에도 들썩인다. 많은 차이도 없건만 외국인이라고 동네 꼬마들은 우리가 가는 곳을 졸졸 따라다닌다.

아이의 가정에 도착하면 먼저 신상조사를 실시한다. 아이의 이름을 확인하고, 생일, 평소에 좋아하는 놀이, 과목 등 전반적인 것들을 묻는다. 그리고 난 후 아이의 키와 몸무게, 건강상태를 체크한다.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고받다보면 어느새 우리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아이의 신상조사는 많은 이야기들은 남긴다. 아이의 생일을 묻자 아이 엄마는 여성의 날에 태어났다거나 수요일에 태어났다며 멋쩍게 웃는다. 그리고는 장롱 깊숙이에서 출생기록표를 찾아와 알려준다. 한 생명이 날갯짓을 시작하는 그 기쁘고 특별한 날에도 가난한 삶의 짐은 평범한 날로 바꿔 놓고 말았다.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물음에 아이는 쉽게 공장일과 물통 닦는 일이라고 말한다.

더 많은 것을 보지 못한 아이에게 꿈이란 그저 현재 엄마가 하고 있는 일, 이웃 아저씨가 하는 일들이 전부인 듯하다. 동네 사람들은 아이 대답에 깔깔거리며 웃지만 우리 마음은 찡하게 아려온다.

신상조사 중 건강체크 항목에 빠지지 않는 건 아이들이 키와 몸무게다. 처음으로 올라가보는 체중계가 마냥 신기한가 보다. 일순 주위사람들의 모든 시선이 체중계 숫자에 집중된다. 저마다 결과가 뭐가 그리 신기하고 재밌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열심히도 꺼내놓는다. 체중계 바늘이 좀 더 올라갔으면 좋겠건만 이번에도 역시나 제 나이 평균몸무게를 넘지 못하고 힘없이 멈춰버린다.

다음으로는 가정환경조사가 실시된다. 아이가 살고 있는 집은 어떻게 되어있는지, 다른 가족들은 누가 있는지, 하루에 가족이 버는 돈은 얼마인지, 가족이 가진 문제는 무엇인지 등이다.

이런 질문들은 물으면 물을수록 미안해질 때가 있다. 괜히 잊고 살았던 어려운 현실을 일깨워주는 것 같아 묻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다. 2달러도 안 되는 소득을 말하는 부모님의 얼굴은 어느새 수심이 가득해진다. 어떤 부모의 눈에는 벌써 눈물이 그렁거린다. 순간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간다.

‘과연 이 사람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아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은 마지막 순서다. 혼자 서 있는 게 멋쩍은지 자꾸 움직이고, 머리를 긁고, 바닥을 보며 괜히 먼지만 차고 있다. 아이의 예쁜 표정을 만들어주는 건 주위에 모인 여러 이웃들이다.

‘웃어라’ ‘다리는 모아라’ 여기저기서 코치하느라 다들 바쁘다. 모든 조사가 끝난 후 아이의 손을 잡고 “이제 넌 한국친구가 생기는 거야. 여자일수도 남자일수도 있어. 나이가 많은 친구일수도 있고, 너보다 어린 친구일수도 있어. 기쁘지?” 굳어 있던 아이 얼굴에 웃음이 잠시 머물다 간다.

집을 나서자 다시 뜨거운 햇빛이 내려쬔다. 살갗이 조금이나마 덜 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래만 보고 다녔던 고개를 들어 잠시 하늘을 쳐다본다. 파란 하늘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유난히도 넓어보이던 캄보디아 하늘.

돌아오는 길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물통 닦는 일이 꿈이라던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 아이에게 저 하늘과 같은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