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남편 유제한 박사와 함께 의료 선교사로서 영혼을 사랑하며 인간을 사랑했던 그레이스 루 선교사의 서거에 즈음하여 미주교회 게시판에 올려진 글을 선교사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현재 외국에서 섬기는 한국인 선교사들의 세대에는 기억나지 않는 역사의 한 부분이실 수도 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이런 분들의 헌신적인 선교 활동이 있었기에 오늘날 한국이 복음화되고 선교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출신의 선교사들을 이런 사실을 기억하며  앞서 간 선교사들의 모본을 따르고 그들의 수고를 기억하는 일은 의미 있는 일입니다. 한국교회의 초창기에 기초를 놓으셨던 분들이 이제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재림을 그토록 고대하며 한국에서 젊음을 바쳐가며 헌신하셨던 분들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복음의 빚진 자로서 더욱 헌신을 다짐합니다. - 영원한 복음 관리자

천사: Mrs. Rue를 보내드리며... 재미 삼육 간호 총 동문회

미세스 루 를 추모하며 두서없이, 문법도 잊어버린 채 형편없는 글 재주로 고인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이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면 다시 쓸 기회가 없다고 생각되기에, 그리고 많은 분들이 용기를 내어 글을 써 주시면 하는 비람으로 내 기억을 더듬어 쓴 글이니 잘못 기록 된 점들이 있으면 여러분들의 양해를 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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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가 몇 년 지난 후 서울 위생병원에는 600이란 건물에 소아과가 환자 아닌 환자로
꽉 들어있던 때가 있었다. 물론 영양실조된 아이들이 있었고, 아픈 아이들도 있었지만 거의고아들로  차 있었다. 몇 달 부터 몇살인지 잘 몰라도 Baby Crib 안에 들어갈 정도의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방마다 나무로 만든 작은 박스 침대에 아이들이 방마다 꽉 차 있었다. 지금도 가끔 그 아이들의 얼굴이 보이는 꿈을 꾼다.
우리 간호원들은 죽 끓이는 법, 기저귀 갈아주고 목욕시키는 일, 죽 먹이는 일, 이외에도 아이들을 많이 안아주라고 배웠다. 물론 일반 소아과 아이들의 기록처럼 chart에 기록하는 일,체온 재는 일 약 먹이는(그때는 영양제를 많이 다 먹임) 일 등등 의 일로 바쁘기도했다.
너무 많은 아이들이라 손 가락을 빨고 침대에 서서 팔을 벌리고 안아 달라고 하는 아이들을 다 안아주려면 일을 할 수 없으니까 우리 젊은 철부지 간호학생들은 애들을 대강 안았다가 내려놓고 기저귀 갈아주고, 불을 끄고 방문을 닫고 나오면 아이들의 우는 소리가 문 뒤에서 들려오는데, 마침 Mrs. Rue가 밤중에 시찰을 나오신 것이다. 자주, 아무때나 예고없이 오시기 때문에 항상 조마조마(?) 하던 차에 그 분이 나타나시니 암행어사가 출도하신 것 처럼 저희 간호원들이 몸둘 바를 모르고 있는데 그 분은 아무 말씀하시지 않고 아이들 방으로 들어가시어 우는 아이들을 보시고 눈물을 글썽 이시며 하나 하나 안아 주시고 만져 주시고 뽀뽀 해 주셨다.
정말 아이도 낳으시지 않으신 분이 어떻게 그렇게 아이들에게 잘 하시는지 모든 아이들이 천사를 만난 듯 좋아하곤 했다. 아이들은 사랑이 그리웠고 엄마의 손이 그리웠던
것이다.
확실히 그분은 날개 없는 천사였다. 아무곳이나 아이들(고아들)이 있다면 달려가서
그 아이들을 데려 오셨고 그리하여 아이들이 커 가고 있을때 그들의 집 성육원을 마련하시고  이제는 아이들이 실컷 떠들고 놀수있다고 생각하며 아이들을 옮기는 날  너무 기쁘셨단다. 작년에 내게 하신 말씀 "지금도 마음에 아픈것이 그때 양개장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계란을 많이 먹이려고 했는데 닭을 더 많이 사 주었더라면 아이들이 실컨 먹었을텐데......." 하시면서 눈물이 글썽 글썽 하셨다. 일 하는 분들의 임금을 주기 위해 그 계란을 다 먹지 못하고 팔았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알게 되셨다고 하시면서 마음 아파 하시는 그 모습이 참으로 친 엄마가 자식들 생각 하는 것 처럼 들렸다.

그 분이 많은 고아들을 해외로 입양시킨것은 모두 다 아는 사실이지만 미국 가정으로 364명 (정확한 숫자를 나이 98세에도 기억하심) 그리고 놀웨이와 스웨덴으로 거의 같은 숫자라고 하셨다. 나중에 그중 스웨덴으로 입양된 한 남자 아이가 장성하여 미세스 루를 찾아와 붙잡고 불행하였다고 말 하여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고 하셨다.
"나는 입양시키기 전에 얼마나 철저히 조사를 하고 보냈는데...." 하시면서 마음 아파하시던 말 생각난다. "그 아이 하나만 불행했다고 찾아왔었다"고 하셨다.
성육원에서 자란아이들이 삼육대학에 들어 가 공부하고 졸업했을때 제일 기쁘셨단다.
항상 " 예수님께서 속히 오실 터이니 준비하라"고 하시는 철저한 재림교인이셨다.
한국간호원들에게 하실 말씀을 묻는 나에게 한국간호원들은 다 열심히 일하고, 친절한 간호원들이며, 당신에게 베푼 사랑을 잊지 못한다고 감사하셨다.

한국 동란 후 그 어렵고 가난하던때 잘 먹지 못하던 때를 기억하시는지 간호원들이 그가 계시는 Retirement Home 에 방문가면 식당에서 당신이 잡수실 음식을 자꾸 주시면서 먹으라고 하셨단다.
그가 계셨던 방에는 거의가 한국 물품이었다. 작은 병풍, 벽에 걸린 수놓은 한국 그림들이 색이 바랬고, 테이불 위에 놓인 사진들도 한국........, 이렇게 온통 한국인이 되신 그녀가 우리에겐 바란 것이 하나도 없었다. 방 한 칸에 침실과 거실로 되어있는 싱글 룸에는
작은 싱글 침대가 달랑 놓여있었고, 창가에 화초 몇 개가 물을 너무 많이 주어서인지 다 죽어 가고 있었는데 버리려고 하니 절대 버리지 못하게 하셨다. 그리고 그가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며 돌 보시는 건물 주변 화단으로 오라고 하시더니 화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꽃 이름을 일일히 아르켜 주셨다.

새로 들어온 사람이 흑인 여자인에 거동이 불편하다고 도와 드리려 식당에 가신다는 말도 들려주셨고, 작년부터 가슴이 가끔 아프고 기운이 없어 많이 누워 계시지만 남을 도와주면 아픈것을 잊어버린다는 말도 해 주셨다.
내가 미국오려고 애쓰던 1967년 봄, 2번 비자 거부를 당하고 3번째 비자를 받으려
할때는 Mrs.Rue가 동행하시어 3년 만에 비자를 받게 되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그러나 당신은 많은 사람들의 비자를 도와 주시어서 인지 내 일을 기억하시지 못하셨다. 나는 그때의 은혜를 잊을수 없다.
참으로 베프시는 삶만 사신 그분께 한국인들이 진 빚은 계산 할 수 없으리라 본다.

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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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스 루의 추모예배-
   8월 8일 오후 4시,(서부야영회가 끝나는 안식일)
   장소: Paradise SDA Church(미국인 교회-1,500석) 
   "오시는 모든 분들에게 저녁식사를 무료로 제공함-그 교회 도르기회 제공"

  • 간호동문회 전체 이름으로 화환 보내기로 계획 

    교회 주소:
    Paradise  SDA(American) church
    5720 Academy Drive
    Paradise, CA 95969
    Church tel: (530) 877-4454
    Napa에서 약 3시간 걸린다고 함

    조카 되시는 분 주소:
    Betty Edwards
    2901 Pennyroyal Dr.
    Chico, CA 95928 (Paradise 서 가까움)

    Tel:(530)894-3757( 며칠후 부터 전화 하심바람)
    이 메일주소: grandmabetty@clearwire.net

    카드나 이 메일을 조카되시는 Betty(67세-RN) 에게 보내시면 대단히 위로가 될줄 앎니다. 아주 인정이 많고 고모님(Mrs. Rue)을 잘 돌 보신 분인데 아주 슬퍼하시고 있음

    재미 삼육 간호 총 동문회 회장 김경자(Leah Kim-11회) (828)254-7667
                                                서기 이영자(Patsey Kim-9회)(714)898-47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