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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째 계속 안식일에 비가 내리지 않는 기적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 강소성의 성도인 난징(南京)에는 매 안식일에 500명이 모이는 안식일교회가 있다.
작년 12월,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 2,000평방 미터의 대지에 건축을 착공하여 기초공사가 시작되었으나
소음을 피하기 위해 1주일에 이틀만 낮에 중장비를 이용한 공사를 진행하고
중국의 3대 부뚜막 도시(충칭, 우한, 난징) 가운데 하나인 이 도시의 찜통 열기 때문에 대부분의 공사는 밤에 진행하고 있다.
1958년 이 도시에 있었던 28개 교회들 가운데 오직 두 곳에서만 집회가 허락되어
안식일교회 성도들은 이 두 교회 가운데 한 교회 건물을 안식일과 일요일에 두 회중이 함께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요일에 모이는 교인들이 안식일에 모이는 교회로 이동이 빈번해지자
두 교회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4년 전부터는 숫적인 강세를 이용하여 일요일에 모이는 회중이 안식일 아침 10시까지 건물을 내주지 않고 다른 집회를 하여
지난 4년 동안 안식일 학교를 노천에서 운영하고 10시가 넘어 교회로 들어가 설교예배를 진행해야 했다.
남경은 여름에 비가 많이 내리는 도시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난 4년 동안 안식일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내가 이 도시를 방문하는 이번 안식일에도 새벽부터 하늘이 맑았다.
오늘도 어제처럼 35도의 숨막히는 찜통 날씨가 예상되지만
노천에서 안식일학교를 진행하는 500명 교우들을 위한 푸른 날씨에
성전건축을 위해 헌신하는 성도들을 만날 설레임에 즐겁기만 하다.
오후에는 80명의 침례식이 있다고 한다.
중국 강소성의 성도인 난징(南京)에는 매 안식일에 500명이 모이는 안식일교회가 있다.
작년 12월,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 2,000평방 미터의 대지에 건축을 착공하여 기초공사가 시작되었으나
소음을 피하기 위해 1주일에 이틀만 낮에 중장비를 이용한 공사를 진행하고
중국의 3대 부뚜막 도시(충칭, 우한, 난징) 가운데 하나인 이 도시의 찜통 열기 때문에 대부분의 공사는 밤에 진행하고 있다.
1958년 이 도시에 있었던 28개 교회들 가운데 오직 두 곳에서만 집회가 허락되어
안식일교회 성도들은 이 두 교회 가운데 한 교회 건물을 안식일과 일요일에 두 회중이 함께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요일에 모이는 교인들이 안식일에 모이는 교회로 이동이 빈번해지자
두 교회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4년 전부터는 숫적인 강세를 이용하여 일요일에 모이는 회중이 안식일 아침 10시까지 건물을 내주지 않고 다른 집회를 하여
지난 4년 동안 안식일 학교를 노천에서 운영하고 10시가 넘어 교회로 들어가 설교예배를 진행해야 했다.
남경은 여름에 비가 많이 내리는 도시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난 4년 동안 안식일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내가 이 도시를 방문하는 이번 안식일에도 새벽부터 하늘이 맑았다.
오늘도 어제처럼 35도의 숨막히는 찜통 날씨가 예상되지만
노천에서 안식일학교를 진행하는 500명 교우들을 위한 푸른 날씨에
성전건축을 위해 헌신하는 성도들을 만날 설레임에 즐겁기만 하다.
오후에는 80명의 침례식이 있다고 한다.
2009.07.19 19:27:47 (*.99.111.50)
남경은 저의 중국 고향과 같은 곳입니다. 이곳에서 중국어를 익혔습니다.
지방에서 유명한 남경대학이 있는 곳입니다.
남경교회는 개신교회와 같이 있었는데, 제가 알기로는 성공회 교회 였던 것 같습니다.
그 옆에 부속건물에서 예배를 드렸었는데, 어느날 소방서에서 무너질 건물(?)이라며 사용금지 처분을 내렸습니다. 아마도 옆의 교회의 시기가 그때부터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개신교회의 건물에서 예배드리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목사님의 말씀을 거의 못 알아 들었습니다. 특유의 사투리인지는 몰라도...
키가 작으시고 마르셨고 결혼을 아직 못하셨는데 지금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참으로 믿음있고 중심이 있으신 목사님이십니다. 그 작은 키에서 하나님의 엄청난 에너지가 나옵니다.
진실하시고 가난하지만 늘 만족하시는 모습같았습니다. 어느날 제 기숙사에 찾아오셔서 맛있는 중국 음식을 사오신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함께 공산혁명이전의 우리 중국 삼육대학에 방문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몇분의 교우님들과 예전 삼육대학에 방문하던 그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아쉽지만 중국 정부에 "남경제경대학"이라고 바뀌었습니다.
혹시 남경제경대학 홈페이지를 보실 수 있다면 그 대학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선교사들의 숙소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마치 예전 한국 삼육대학 선교사 숙소들 같습니다.
캠퍼스는 너무나 멋있는 곳입니다. 이곳이 다시 우리 교회 소유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곳에는 아직도 위생병원 건물이 병원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남경 시내에서 한 시간 가량 버스를 타고 갔던 곳인데, 지금 혼자 가면 못 갈 것 같고 남경교회 목사님은 아실 것입니다.
언젠가 다시 남경에 갈 기회가 있다면 꼭 그분들을 뵙고 싶습니다.
지방에서 유명한 남경대학이 있는 곳입니다.
남경교회는 개신교회와 같이 있었는데, 제가 알기로는 성공회 교회 였던 것 같습니다.
그 옆에 부속건물에서 예배를 드렸었는데, 어느날 소방서에서 무너질 건물(?)이라며 사용금지 처분을 내렸습니다. 아마도 옆의 교회의 시기가 그때부터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개신교회의 건물에서 예배드리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목사님의 말씀을 거의 못 알아 들었습니다. 특유의 사투리인지는 몰라도...
키가 작으시고 마르셨고 결혼을 아직 못하셨는데 지금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참으로 믿음있고 중심이 있으신 목사님이십니다. 그 작은 키에서 하나님의 엄청난 에너지가 나옵니다.
진실하시고 가난하지만 늘 만족하시는 모습같았습니다. 어느날 제 기숙사에 찾아오셔서 맛있는 중국 음식을 사오신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함께 공산혁명이전의 우리 중국 삼육대학에 방문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몇분의 교우님들과 예전 삼육대학에 방문하던 그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아쉽지만 중국 정부에 "남경제경대학"이라고 바뀌었습니다.
혹시 남경제경대학 홈페이지를 보실 수 있다면 그 대학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선교사들의 숙소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마치 예전 한국 삼육대학 선교사 숙소들 같습니다.
캠퍼스는 너무나 멋있는 곳입니다. 이곳이 다시 우리 교회 소유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곳에는 아직도 위생병원 건물이 병원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남경 시내에서 한 시간 가량 버스를 타고 갔던 곳인데, 지금 혼자 가면 못 갈 것 같고 남경교회 목사님은 아실 것입니다.
언젠가 다시 남경에 갈 기회가 있다면 꼭 그분들을 뵙고 싶습니다.
진리교회임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건가 싶네요.
80여분의 새로나는 영혼들...역시 반가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