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따르라"(Follow the Bible)는 대총회의 의미심장한 표어는 재림교회가 21세기에 추구해야 할 가장 핵심적인 가치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천명해 준다. 예수께서 명령하신 교회의 사명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인데, 그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야 하기 때문에 성경을 따르는 삶은 가장 중요하고도 본질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일 수밖에 없다. 인식이 여기까지 이르는 데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성경을 따르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이 표어를 진지하게 살펴보면 거기에는 우리가 미처 생각해 보지 않았던 매우 중요한 그리스도인 삶의 방향이 제시되어 있다.


 대개 많은 사람들은 "성경을 따르라"는 말을 듣게 되면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종교개혁자 들의 표어를 떠올리게 된다. 그 동안 나태했던 신앙생활에 좀 더 활력을 주기 위해서 날마다 성경을 읽고,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삶을 살자는 일반적인 호소 정도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그동안 멀리했던 성경을 더욱 더 가까이 놓고, 성경 통독 계획을 세우며 가급적 매일 성경을 읽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게 된다. 더 나아가 성경 구절들을 암송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교회마다 신자들의 성경통독 과정을 체크하고, 설교 단상에서도 성경을 읽자는 호소가 더 많아진다. 이렇게 성경을 개인의 신앙목표와 교회의 사업계획에 중요 콘텐츠로 삼고 여러 목표들을 추진한다. 그러나 이것이 "성경을 따르는 삶"인가? 물론 성경을 관심의 중심에 놓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그리고 날마다 성경을 읽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노력하였다는 점에서 성경을 따르는 삶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이것만으로는 성경을 따르는 삶이라 말할 수 없다. 성경을 따르는 삶이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명령을 따라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한 가지 비유(마21:28~31)로 이런 사실에 대해서 잘 말씀해 주셨다. 한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그에게는 커다란 포도원이 하나 있었다. 그는 큰 아들에게 가서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아들은 "아버지여 가겠나이다"하고 대답했지만 일하러 가지 않았다. 그는 다시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똑 같이 말했다. 둘째 아들은 "싫소이다"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곧 뉘우치고 아버지의 말씀대로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였다. 이 비유를 들으시면서 예수는 "그 둘 중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31)하고 질문하셨다. 이 비유는 예수께서 마지막 수난 주간 중에 예루살렘 성전을 정결케 하신 사건이 있고 난 다음 날에 성전에서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료들과 더불어 변론하는 과정에서 하신 말씀이다(마 21:23).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이스라엘 종교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시는 예수에게 도대체 무슨 권세로 그런 일을 하였느냐고 질문을 하였다. 저들은 예수의 지적이 하나님의 권세로부터 왔음을 믿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분의 행위에서 하나님의 명령이 번뜩였지만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지 않았다. 분명하게 보면서도 그걸 따르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런 저들에게 예수는 요한의 침례가 어떤 권세로부터 왔느냐고 되물으셨다. 침례요한의 권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은 저들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걸 고백하는 순간 요한을 죽인 헤롯의 잘못을 비판하게 될 수밖에 없자 저들은 대답하기를 기피하였다. 침례요한을 통해서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예수께서 이 비유를 주셨다. 예수의 성전정결과 요한의 회개의 기별을 거절한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 따르기를 거절하였다. 비유에 등장하는 큰 아들처럼 말이다.


이 비유는 2009년을 살아가는 재림교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던져 준다. "성경을 따르라"는 표어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따르라는 표어는 단지 성경을 통독하고 외우라는 말이 아니다.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보편적으로 드러난다. 침례요한의 회개의 기별과 예수의 삶을 통해서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드러났다.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매우 가까이서 생활하였다. 그러나 그 말씀이 아무리 가까이에 있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계시를 통해서 예수의 삶 속에서 말씀하셨지만 그 말씀을 들을 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지금 우리에게서도 마찬가지이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에서 나타난 내용들을 가지고 설교하지만 정작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그리스도인들은 많지 않다. 유대인들처럼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그 분의 명령을 따르는 삶을 살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의 믿음이 자라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설명한다(롬 10:17).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삶에서 성장한다.


그렇다면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은 성경의 말씀을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성경의 문자만을 읽는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율법주의 정신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문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들이 말하는 사상 속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육신의 눈으로만 읽지 말고 영의 귀로 들어야 한다. 이것이 말씀을 듣는다는 첫 번째 의미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의미는 그 들은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예수의 비유에서 아버지의 말씀을 들은 사람은 당연히 포도원에 가서 일한 둘째 아들이다.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그 명령을 따라 실천하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성경을 따르라"는 표어는 바로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성경을 따르는 삶은 성경을 읽으면서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명령을 듣고, 그 명령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명령은 무엇인가? 아들에게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는 아버지의 명령과 같지 않은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은 분명하다. 그것은 포도원(세상)으로 나가서 아름다운 포도원(하나님 나라)을 만들라는 것이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사랑과 정의와 나눔과 희망이 공존하는 세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러한 가치들을 추구하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예수님의 삶과 교훈을 통해서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그 명령을 듣고 따라는 그리스도인들만이 진정으로 "성경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이다. 성경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만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게 된다. 우리의 영원한 희망인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경(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 실현에 앞장서는 재림교인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앞당겨질 것이다. 부디, 성경을 따라 실천하는 삶의 모본을 보이는 서중한합회의 교인들이 되기를 당부한다.


이국헌_신학박사, 삼육대학교 채플 담당 목사
서중한합회 계간회보 교회사랑 35호/봄

Blessing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