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씨가 240㎞의 먼 거리까지 날아갈 뿐 아니라 그 곳에서도 강하게 살수 있어 ‘민들레 영토’란 이름을 지었다. 젊은 나이에 좌절과 실의를 경험한 후 자기처럼 외롭고 지친 사람들이 마음껏 와서 쉬고 대화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찻집 쉼터를 열었다는 사장의 창업동기도 특이하다. 1994년 10평 남짓 공간에서 시작한 사업이 빠르게 성장하여 전국 25개 지점으로 확장되었고(2009.8월) 국내 외식업소 소비자 만족도 1위를 달리고 있다. 핵심 성공 요인을 감각(sense), 감성(feel), 인지(think), 행동(act), 관계(relate)를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체험 마케팅’ 전략으로 풀이한다.
1863년 SDA가 조직될 당시 3,000명에 불과하던 교인수가 2007년엔 1500만 명을 돌파했다. 반면 제칠일침례교는 1800 년대, 재림교회 보다 더 많은 신자를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신도수는 5만 정도에 머물러 있다. 재림교인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이런 엄청난 차이를 몰 고온 원인 중 하나가 안식일에 대한 견해 차이라고 지적한다. 즉 재림교회는 안식일을 세 천사 기별과 함께 선교 신학의 중심으로 적극 활용해 선교확장을 꾀할 수 있었으나 제칠일 침례교회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성서적으로나, 재림교회 역사적으로 보나 안식일 기별과 신학은 선교와 뗄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해 왔고 앞으로도 그 연합은 변함없이 견고할 것이다. 그러나 해결할 과제도 있다. 그 동안 안식일이 복음전파, 영혼 구원 등 주로 외적이고 교리적인 측면에서 많이 강조 되어왔다면 이제는, 거기에 성도의 개인, 가정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조차도 그 의미와 가치를 삶에서 내적으로 경험토록 하는 것이다. 쉼 없는 세상살이에 휴식은 분명 복음이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쉼을 나누는 것이 선교이다. 이런 의미에서 안식일은 분명 선교를 위해 제정되었다.
“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육축이나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고……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신 5:14). 범위가 확실하다. 너와 가족부터 시작해 돕는 자들(종들), 그리고 객(이웃, 이방인)에 이르기까지 안식을 전하고 동참을 명하신다.
태초에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준비하신 다음 인류에게 안식일을 맞도록 하셨던 그 분께서 애굽의 노예로 무소유, 부자유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신분, 가족, 재산까지 회복시켜 주신 후 안식으로 초청하셨다. 안식일은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전할 뿐 아니라 우리의 구속, 중생, 변화를 전하는 날이기도 하다.
“볼지어다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 제 육 일에는 이틀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그러므로 백성이 제 칠일에 안식 하니라” (출 16:29-30). 여기서도 백성들의 필요(음식)를 다 채워주신 후에야 안식일 준수를 명하셨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나가는 믿음이 필요하다. 왜냐면, 그 분께서 우리를 쉬게 하시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얼마나 많은 수의 사람을 재림교회 안으로 끌어들여 침례를 베푸느냐만큼 중요한 것은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참되게 신실하게 섬기도록 하느냐라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삼육학교에서 부목으로 섬기던 해에 8명 남짓의 고3 학생들이 침례를 받지 않고 졸업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교감선생님께서 침례를 받지 않고 삼육학교를 졸업하게 하다니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역정을 내시는 모습을 보고 생각이 많았었습니다. 억지로 침례를 주었더라면 모두 침례를 주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침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통계상 교인 수치와 실질수치간의 괴리가 오늘날처럼 깊어졌던 적이 있을까요? 삼육학교를 졸업하고 나간 학생들이 10년후 교회에 남아 있는 비율이 얼마나 될까요?
안식일을 성경 본연의 위치로 되돌려야 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말씀을 말씀 본연으로 돌려야 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이리저리 이용해 먹지만 말고 우리 모두 각자 자신과 가정과 교회부터 말씀을 경험하고 쉼과 안식의 삶을 살아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