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보고 2009-2


2009년 3월 8일(일요일) 새벽 4시,
짙은 어둠을 뚫고 양승천 선교사님과 베나(Vennah) 선교사, 말렘베(Malembe) 목사님,
그리고 저희 부부, 이렇게 다섯 명은
이곳 대회장 키순주 목사님의 4륜구동 자동차를 빌려 타고 북쪽으로 향했습니다.


우리의 이번 여정 최종 목적지는 콩고의 북동쪽 끝부분에 위치한
아루(Aru)라는 지역에 있는 룩바라족 선교지인 벧엘교회였습니다.

아루(Aru)는 우리 선교본부가 있는 부템보(Butembo)에서 북동쪽으로 약 620Km 떨어져 있는 곳으로
북쪽으로는 수단과 가까이 있으며 동쪽으로는 우간다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곳입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는 이번 여행을 쉽게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큰 모험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도로사정이 나빠 며칠이 걸릴지 모르는
아주 멀고도 험한 여정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이틀만에 그곳 벧엘에 도착하자
벧엘교회에 파송되어 있는 루칸도(Lukando) 목사님께서
정말 놀라운 여행이었다고 감탄을 할 정도였으니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고 양선교사님을 따라 무작정 떠나지 않았다면
쉽게 갈 수 없는 선교지였던 것입니다.


동이 트고 발이 밝을 때쯤에 베니(Beni)에 도착했을 때
그만 바퀴에 펑크가 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스페어 타이어를 두 개나 준비해서 떠났기 때문에 교체하는데 문제가 없었지만
이번 여행의 힘든 여정을 실감할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베니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키순주(Kisunzu) 목사님(대회장의 동생) 댁에서
준비해 준 간단한 아침을 먹고 있는데
마침 고마 연합회와 지회에서 온 방송책임자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콩고는 영어를 쓰지 않고 불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기 때문에
HopeChannel을 그대로 받아서 방송할 수 없어서
자체 방송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트랜스미터(transmiter; 방송송출기)라는 장비로
방송을 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벌써 송출기를 설치를 하고 이제 방송을 내보내면 된다고 하는 군요.
특히 제가 이곳 대회의 TV와 라디오 방송 책임을 맡게 되었기에
특별한 관심을 끌었습니다.


식후에 다시 여행길에 올랐는데
첫 번째 방문지는 말로만 듣던 피그미 선교지인 마켈레(Makele)였습니다.
현재 마하선교회의 지원을 받고 있는 캇손게리(Katsongeri) 목사님이
가족들과 함께 피그미 선교를 위해 헌신하고 있었습니다.


피그미족들은 문명화를 거부하고 숲속에 들어가서
나뭇가지와 잎으로 집을 짓고 사는 키가 작은 종족으로
이들을 위한 선교가 벌써부터 시도되었으나 별성과를 얻지 못하다가
콩고 목회자들이 직접 그들과 섞여 살면서 복음을 전하게 되자
드디어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 마켈레 캠프 역시 그런 경우인데
이 교회에는 현재 콩고 교인들과 피그미 교인들이 함께 한 교회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신자들과 간단한 만남의 시간을 가진 다음,
목사님께 부산서면학원교회의 김인자 사모님께서 전해 주신 의약품 일부를 기증하고,
아쉬운 작별을 고했습니다.


이들의 작은 체구처럼 아직은 신앙이 여리고 작지만
이들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영적 거인으로 성장하도록 많은 시도와 연구와 지원이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


이곳을 떠나 다시 가던 길을 재촉하는데
하필 3월8일이 콩고의 여성의 날이라
동네마다 여인들이 나와서 퍼레이드를 펼치고 있어서
그 행진을 뚫고 지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외국인이 아니었다면 아마 그 날 여행을 목적지까지 마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날 저녁 우리는 Bunia에 있는 한 호텔에서 1박을 하고
그 다음날 새벽3시에 우리의 최종목적지인 벧엘 교회로 향했습니다.


가다가 화장실을 찾기 위해 한 마을에 들렸는데
온 동네의 사람들이 나와서 신기한 무중구들을 구경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었더니 모두가 기겁을 하고 도망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제대로 된 카메라를 구경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신기해 하면서
모두 카메라렌즈를 향해 들어올 기세였습니다.

아직도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이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 생명의 말씀이 먼저 전해져야 할텐데...


아침식사를 위해 경치 좋은 길 옆에 차를 세우고 빵과 음료수를 나누는데
역시 아이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함께 동행한 선교사 베나가 아이들에게 빵 한 조각씩을 나누어 주자
멀리서도 아이들이 보고 달려왔습니다.
이 배고픔이 일상이 되어버린 아이들에게 빵만을 나눠주지 않고
어떻게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벧엘로 가는 길은 정말로 험한 길이었습니다.
가는 동안 펑크난 타이어를 네 번이나 갈아야 했고,
타이어의 휠베어링까지 교체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중간중간마다 널부러져 있는 고장난 차들을 수없이 만날 수 있었고,
아예 자동차 밑에 들어가 하룻밤을 길바닥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는 길에 우박을 동반한 소나기가 쏟아져
불과 몇분만에 진흙탕으로 변해버린 도로를 빠져나가느라
여간 애를 먹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다가 큰 다리 하나를 만났는데
다리 양편으로 대형 트럭들이 줄지어 서있었고,
사람들이 큰 드럼통을 굴려서 다리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들은 이야기인즉
이 다리가 약해서 트럭들이 무거운 짐을 싣고 건널 수 없기 때문에,
다리를 건너기 전에 짐들을 다 내려서 짐을 먼저 하나씩 나른다음
가벼워진 자동차가 건너고
그 다음에 다시 그 짐들을 트럭에 싣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겨우엔 그것을 기다리느라
일주일을 그곳에서 보내기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정말 다행인 것은 그렇게 험한 길에서
길을 완전히 막아 지나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차를
하나도 만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차를 만났다면 그날 밤을 꼬박 자동차에서 보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같이 동행한 말렘베 목사의 말에 따르면
지금은 그래도 건기이기 때문에 이틀만에 갈 수 있었지만
우기때는 일주일까지 각오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마침내 그날 오후5시쯤 우리는 벧엘 교회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에 도착하기전 약 1km 전부터 손에 나뭇가지를 흔들며
환영의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약100m 정도 더 가자 아예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이었습니다.
도저히 자동차로 더 갈 수 없어서 환영인파와 어울려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벧엘교회까지 걸어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조금도 지치지 않고 열성적으로 노래하며 환영을 할 때
마치 대통령이라도 된 듯 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라도 주민들에게 이 정도의 환영을 받을 수 있을까요?
마음에서 우러나온 환영의 인파에 이끌려 가는 동안
쌓였던 모든 피로가 다 사라지는 듯 했습니다.


이 곳에 마하 선교회가 목회자를 파송하고 활동을 시작한 이래
채 2년이 되지 않은 짧은 시간동안에 하나님께서 이룩하신 놀라운 사업을 보는 것은
큰 감격이요 기쁨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의 한 가운데 내가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특권일까요?


그러나 아직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곳 벧엘에서 하나님께서 어떤 큰 역사를 이루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분명 하나님의 영광이 크게 드러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리고 그 위대한 역사에 사용되는 유용한 도구가 되는 것이
선교사로서 우리의 일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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