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를 꺾으며


한국에서는 한 번도 고사리를 꺾은 적이 없었다.

명절때 형님이 요리를 해 주시면 맛있게 먹을 줄만 알았지, 한 번도 내 손으로 꺾어보거나

"이게 고사리다"라고 관심을 가져 본 적도 없었다.


콩고에 와서 고사리를 처음 발견한 것은 오자 마자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첫 선교 여행을 가던 중이었는데, 무척이나 반가웠었다. 그 뒤로 어디를 가든지 고사리를 쉽게 볼 수가 있었다. 정말 온 콩고 전체가 고사리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이 있었다. 게다가 여긴 1년내내 기온이 같으니 언제든지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고사리를 꺾어서 요리를 하기 시작한 것은 서너 달 정도 되었다. 지나칠 때 마다 잠깐 차를 멈추고 꺾어 갔으면 했지만, 대부분이 안식일 오후거나 함께 탄 사람들이 많아서 군침만 삼킬 수 밖에 없었다.


처음 고사리를 조금 꺾어 왔을 때 특별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무척이나 설레었다. 한국의 가족들과 느린 인터넷을 검색해서 요리법을 찾아 보았다. 하지만 첫 요리는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생긴 것도 그럴 듯하게 하게 생기고, 냄새도 제법 고사리 냄새가 났지만 맛은 어찌나 쓴지 도저히 젓가락이 가지를 않았다.


한 두어 번 더 실패를 한 후 부터는 나름대로 제법 맛이 나기 시작했다. 형님 손에서 나온 것과는 아직 비교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타국에서 고사리를 먹을 수 있다는 기쁨과, 매일 반복되는 식단에 한 가지 더 추가하게 된 것이 우리 가족을 행복하게 했다.

그 뒤로 우리는 틈나는 대로 고사리를 꺾는다. 선교 여행 다녀오다가도 길옆에 고사리가 보이면 잠시 차를 멈춘다. 한 10분만 투자를 해도 몇 끼를 먹을 수 있을 만큼 가져올 수 있다. 한국에서는 명절에나 먹을 수 있는 비싼 고사리가 여기에는 가는 곳 마다 지천인데다, 우리 밖에 먹는 사람이 없으니 굳이 한꺼번에 많이 꺾으려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된다. 처음엔 너무 어린 것이나 너무 자란 것도 꺾었지만, 이제는 덜 자란 것, 너무 세어져서 맛없을 것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루캉가 대학 안에도 고사리가 많이 있다. 우리 집 앞으로 1시간내로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나지막한 산이 있는데 어쩌다 시간이 나면 예찬이와 시은이도 함께 산에 올라간다. 운동도 하고 고사리도 꺾고, 산상기도회도 한다.


그런데, 고사리는 한 번도 안 꺾은 곳 보다는 몇 번 꺾은 장소에 더 많이 올라온다. 고사리 잎이 무성하여 혹시 꺾을 것이 있나 가 봤더니 거의 없고 오히려 우리가 꺾은 흔적이 있는 쪽에는 막 땅에서 올라오는 맛있어 보이는 것들이 많이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꺾을 때 포자가 떨어져서 번식을 하나보다. 마치 박해를 받을수록 더 많이 성장하는 그리스도교처럼....


고사리는 꺾어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니 꺾어온 날부터 몇 일간은 말리느라 부지런히 돌봐야 한다. 잘 삶아 건져서 햇볕에 널어 놓고, 혹 비가 오는지 살피며 곰팡이가 피지 않도록 자주 들여다 본다. 사실 먹거리를 위해 이렇게 정성을 기울이는 것은 내 모습이 아니었다. 어디든 가면 쉽게 사 먹을 수 있으니 먹고 싶을 때 조금 사먹는 것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많이 저장하는 것보다 낫기도 했었다. 또,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한 잦은 외식 때문에 냉장고 안에 음식이 썩어 가기도 했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남편은 연합회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들어오던 서울살이에 크게 음식을 저장해야할 필요를 느끼지도 않았었다.


학교 급식이라는 말이 이 곳에서는 낯설다. 어디 방문을 가도 밥을 얻어먹을 수 있는 곳이 없다. 식당을 가끔 찾을 수 있지만, 음식을 사 먹을 만한 곳이 없다. 그래서 모든 식구가 집에서 밥을 먹어야 한다. 냉장고가 없어서 한꺼번에 많은 음식을 할 수가 없다. 전자렌지가 없어서 매끼 요리를 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이 불편하고 귀찮지만, 가족들의 건강에는 더 없이 좋음을 감사할 수 밖에 없다.

요즘은 함께 일하는 선교사들이 고사리를 더 좋아한다. 아무래도 머지 않아 경쟁자가 생길 것 같다. 꺾어와서 삶고, 말리고, 다시 물에 몇 일간 불려서 요리를 하는 기간이 이제는 귀찮지만은 않다. 맛있는 고사리를 먹을 생각을 하며 기다리는 몇 일이 사뭇 행복하다.


올해는 한국과 미국에서 손님들이 많이 올 것인데, 그 분들의 행복한 표정을 상상하면서 오늘도 열심히 고사리를 말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