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니아 전도회 보고


이번 부니아 전도회는 많은 기도와 기대속에 작년 말부터 준비해왔습니다.

파키스탄 선교사인 굴자르 교수와 대회 선교부장 무하사 목사님이 함께 했고,

저희 부부와 스펜서빌 한인교회 선교사인 라스웨카 목사, 횡천교회 선교사인 

무붕가 목사, 그리고, 이고운 선교사가 합류했습니다.


부니아라는 도시는 부템보에서 약 270km 떨어져 있으며, 

차로 거의 하룻길을 가야 하는 곳입니다.

앞서 소개드린 대로 재림교회의 교세가 약할 뿐만 아니라,

그저 한 사이비 종교 정도의 인식을 가지고 있는 

아주 열악한 곳입니다.

인구 60만이 살고 있는 도시에 재림교회는 두 곳이 있는데 한 곳은 2년 전에 문을 닫았고, 

그나마 성도의 수도 많지 않습니다.

또한 이곳은 부족간의 갈등으로 인해 

사회뿐 아니라 재림교회 내에서도 많은 문제가 있는 곳입니다.


스펜서빌 전도회가 끝나자 마자 곧바로 부니아 전도회를 위하여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사실 스펜서빌 전도회를 보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강하게 느꼈을 뿐만 아니라

교인들의 열정적인 참여가 있어서 어느 정도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 여정 *

부니아로 가는 길은 단순히 멀어서 뿐만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도 고된 여행이었습니다.

텅빈 어느 마을에 군인들만 돌아다니는 살벌한 장소도 있었습니다.

우간다 쪽에서 넘어온 반군들이 마을을 약탈했기 때문에

콩고 정부군이 반군을 소탕하기 위해 온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군인들이 무기를 소지하고 시내에 나오지 않지만

이곳의 군인들은 실탄이 들어있는 소총을 메고 민간 마을을 돌아다닙니다.

우리처럼 의무가 아니라 자원하는 사람만 군인이 되는데,

정부에서 지원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밤이 되면 사람들을 약탈하고 심지어는 살인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누구를 위해 있는 군인들인지는 모르지만,

총을 들고 마을을 어슬렁거리는 그들과 마주 치는 것이 

유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점심은 길가에서 택시의 트렁크를 식탁삼아 빵으로 간단히 해결하고,

거의 7시만인 저녁 5시반에 숙소에 도착하였습니다.


* 실망 *

도착하자마자 우리의 모든 기대는 날아가는 듯 했습니다.

부니아 교회 목사와 장로 몇 분이 나와서 환영의 악수를 한 후에 

모두 사라지고 숙소엔 우리만 남았습니다.

아주 편하고 좋은 집으로 준비를 했다고 들었는데, 

8명의 대원을 위해서 준비된 방은 고작 2개,

거기다 침대와 메트리스도 없었습니다.

제너레이터만 돌리면 전기를 쓸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연결된 전기선은 아무 것도 없었고,

샤워실은 있었지만 물도 길어와야 했습니다.

피곤한 여행객들을 위해 간단한 식사를 준비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어둠이 이미 내려앉고 있었지만,

우리는 피곤에 지친 몸을 이끌고 

방을 더 빌리고, 침대와 메트리스를 얻어오는 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래, 예수님은 머리 둘 곳도 없으셨는데 뭘... "

그나마 마련된 숙소에 감사하면서 우리가 온 목적을 위해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하지만, 전기와 물이 없는 곳에서 17일을 살았던 것은 

실망 축에 들지도 않았습니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이곳 부니아 사람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부템보와 루캉가 지역의 사람들과 

굉장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도회의 주체가 되어야 할 교인들은 구경꾼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않았고,

담임목사 마저 공부를 해야 한다며 전도회 전날 루캉가로 떠나버렸습니다.

교회의 가장 오래된 멤버라고 소개한 한 장로는

전도회를 통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만 찾았습니다.

심지어 그가 빌려준 제너레이터를 더 이상 빌려줄 수 없다고 

가져가버리는 헤프닝까지 생겼습니다.

정말 여기가 콩고가 맞는지 의심이 생길 정도로 

교인들은 아군이 아니라 적군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접했던 난데 부족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선교하는 사람들이었는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래, 예수님은 유대의 지도자들에게 배척당하셨는데, 

우리는 최소한 배척은 안 당하니까..."

* 전도회 *

전도회는 두 곳에서 동시에 개최되었습니다.

굴자르 교수와 무하사 목사님은 숙서 근처에 있는 텐트에서,

저와 라스웨카 목사는 시내에 있는 큰 홀을 빌려서 

각각 설교와 통역을 했구요,

제 처는 건강에 대해서 매일 30분 정도 두 곳을 번갈아 가며 강의를 했습니다.

건강과 전도 설교 모두 참석자들에겐 정말 큰 충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정말 이곳에 진리의 말씀이 있다는 것을 알겠다고 했습니다.

전도회를 하는 2주 내내 매일 전기가 두 번 이상씩 나가서

늘 조바심 속에 기도하며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또 텐트와 홀의 분위기가 너무 많이 달랐습니다.

텐트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관중이 되어서 흥미롭게 듣다가 가는데

홀은 그런 분위기를 기대할 수 없었구요.

또 결심을 호소하며 앞으로 나오기를 초청할 때 

텐트에서는 거의 70명 가까운 사람들이 주저없이 나왔지만,

홀은 거의 20명 미만이었습니다.

"그래, 숫자에 연연하지 말자."


* 위기 *

5일째인 수요일 집회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우리는 매주 금요일 오후 시간에는 강당을 쓸 수 없다는 보고를 듣게 되었습니다.

두 번의 금요일 모두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순복음 교회의 사업가들이 매주 금요일 오후 시간을 쓰기 위해서 

1년치의 계약금을 냈다는 것입니다.

더 황당한 것은 교회 장로와 목사가 이 사실을 알고도 이 홀을 계약을 한 것입니다.

정말 감당할 수 없는 절망이 밀려왔습니다.

애써 밝은 척을 하려 했지만, 온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목요일 아침을 금식을 하면서 간절히 주님께 매달렸습니다.

이스라엘을 포위했던 아람 군사들이 갑자기 돌아간 것과 같은 상황을 기대했지만,

그와 같은 응답대신 금요일 아침에 집회를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사실 맥이 좀 끊기긴 했지만, 금요일 아침에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서

진지하게 들었습니다. 

오히려 알곡을 골라 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에 감사했습니다.

"그래,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지..."


* 결실 *

처음 이 부니아 전도회를 위해서 100명 이상의 영혼들을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날까지 몇 명이 침례를 받을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 많은 수를 기대하기도 어려웠구요.

끝을 앞 둔 목요일 아침, 집회에 참석을 하지는 않았지만,

12명의 군인들이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는 보고를 들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아들이 매일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목요일 아침 굴자르 교수와 무하사 목사님께서 그들을 방문하셨고, 

그들이 정말 준비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가져오셨습니다.

그리고, 안식일날 이중 3명이 군복차림으로 침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침례 요한을 찾아와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으리이까?"하고 물었던 군인들이

생각났습니다. 

그저 강탈과 살인을 일삼는, 피해야 할 존재로 생각했던 군인들도 

구원받아야 할 연약한 인간임을 새삼 깨닫는 순간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3명의 군인들을 포함, 양쪽 합하여 37명의 귀한 영혼들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100명보다 귀한 37명을 주님께서 기뻐하실 거야....


* 감사 *

가장 힘든 환경 속에서도 8명의 대원중 아무도 건강을 잃지 않고 

무사히 전도회를 마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본 교인들은 일을 거의 못했지만, 부템보, 베니, 코만다 등 

먼 곳에서 트럭을 타고 3일길을 와서 봉사해주신 100여명의 캠퍼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사실 이들의 활동이 없었으면 단 몇 명에게도 침례를 주기 힘들었을 뻔 했습니다.

불철주야로 사람들을 다독이고, 캠퍼들을 이끄신 70이 넘으신 카테소 평신도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목사님은 아니지만 워낙 열정적으로 선교하시는지라 모두들 목사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끝까지 각자의 자기 역할을 잘 감당한 우리 대원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특별히 쥐들과 한 방에 함께 살며 적은 물로 머리감고 샤워까지 하면서도 

카메라, 반주 등 스태프의 역할을 묵묵히 잘 해준 이고운 선교사에게 많이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이 전도회를 위해서 지구 반대편에서 기도로 후원해주신 한국의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 에필로그 *

참석자중 많은 사람이 부인이 여러 명 있거나 남편이 서넛 있는 관계로 침례를 받고 싶었지만, 

먼저 정리하고 오라고 돌려 보내졌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연상케 할 만큼 성적으로도 문란한 도시라고 합니다.


전도회가 끝나면서 가장 걱정스러웠던 것은 과연 교회가 이들을 잘 돌볼 수 있을까 하는 문제였습니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 다시 방문하기도 힘든 곳이라 더 많이 걱정스러웠습니다.

도무지 그냥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서 하루를 더 머물면서 교인들을 위한 세미나를 하기로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교인들이 참석을 할 것인가? 

얼마나 많은 교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다행히도 일요일 아침에 생각보다 많은 교인들이 왔고, 막 침례받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교인들이 못한다면 새 멤버들이라도 해야지..."


특히 이 세미나는 2년 전 문을 닫았던 교회에서 열었습니다.

일요일 아침 교회에 쌓인 묶은 먼지를 털어내고 감사와 헌신예배를 드렸습니다.

교회를 다시 오픈하는 행사를 겸한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카테소 목사님이 6개월 정도 이곳에 머물며 교회를 돕기로 자원해서 결정해주셨습니다.

정말 선교에 미친 듯 보이는 노년의 카테소 목사님이 너무 존경스럽고,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니아에 보내신 목적이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우리의 기별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후에라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로 결심하기를

오늘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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