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광주를 방문하다
아직은 이른 새벽, 아이들을 깨워 광주로 향합니다. 광주삼육초등학교 채플 순서를 맡은 월요일 아침. 무안에서 광주까지는 대략 1시간 정도가 소요되지만 월요일인데다 자주 가는 길도 아니어서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서둘러 출발했지요. 여름이라 그런지 무섭게 올라오는 태양빛과 함께 일주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분주함이 한국임을 실감나게 합니다.
오전 8시 30분, 고학년의 채플시간이 가까워지자 학생들이 속속 강당으로 모여듭니다. 담임선생님과 함께 한 줄로 질서 있게 입장하는 아이들. 순식간에 채워지는커다란 강당 한 켠에서 은하와 은총이는 처음 보는 한국 초등학교의 규모와 위엄(?)에 깜짝 놀라는 듯 하네요. 오랜만에 보는 아침 조회, 미션 스쿨다운 찬양 지도, 여기에 질세라 조잘조잘, 쉴새 없이 웅성웅성 이는 아이들을 보니 저 또한 30년 전, 초등학생으로 소환된 것 같습니다.
드디어 시작된 채플. 교복 셔츠를 걷어붙이고 양변기에 가득 찬 똥을 빼냈던 차 목사님의 중학교 시절 얘기엔 ‘으~~~’ 다같이 눈살을 찌푸리다 가족 대신 고슴도치의 사체를 기꺼이 치운 은하와 반에서 왕따를 당하는 친구를 용감하게 감싸준 은총이의 이야기가 등장하자 모두들 숨죽여 경청합니다. 하자베(Hadzabe) 부족의낯선 가옥 앞에서 신음하는 어린 마타요 이야기에는 ‘아~~~’ 절로 탄식하며 선교지 소식에 집중하는 학생들 덕분에 저희 부부는 고학년에서 저학년으로 이어진 두채플 모두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다시 찾은 학교
학교를 방문한 지 한 열흘쯤 지났을까요? 7월 27일 금요일에 있을 학교 방학식에 꼭 와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7월 20일부터 24일까지 주말을 제외하고, 3일간의 ‘탄자니아 돕기 성금 행사’를 열었는데 학교 측에서도 깜짝 놀랄 정도로 폭발적인 참여가 있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개교 이후 이렇게나 단시간에 많은 성원이 이루어진 것은 학교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도 하셨지요.
탄자니아에서는 닭이 귀한 재산입니다.
우리 돈으로 무려 5천원이나 합니다.
성인 남자의 하루 일당 2500원, 여자 500원에 비하면 엄청 비싼 것이죠.
탄자니아는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에 비해 마약 중독자 비율이 3배 이상 높은 곳입니다. 마약 밀매 루트의 중심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남자들은 마약에 중독되어 무기력한 삶을 살아 가고, 여자 혼자 가정을 돌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루에 500원씩 벌어서 아이들을 어떻게 먹일 수 있을까요...
혹시 과부가 되어도 닭 다섯 마리만 있으면 아이들과 먹고 살 수 있는 곳이 탄자니아입니다…( 중략 )
광주삼육 학부모님,
치킨과 삼계탕을 드실 때마다 탄자니아를 떠올려 주세요.
그리고 이번 기회에 탄자니아 돕기 성금을 모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귀한 성금이 더 귀하게 쓰이도록 하겠습니다.
치킨 드실 때 1인 1닭쯤은 문제 없으시죠^^
탄자니아 돕기 모금도 1인 1닭, 2닭, 3닭 부탁드립니다~!!
순풍순풍 새끼 잘 낳는 염소도 기대하겠습니다~~!!
-‘탄자니아 모금 활동’을 위한 호소문-
이 짧은 기간 동안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는지 사연을 전해 들은 저희 부부는 가슴에 차오르는 감동에 벅찬 눈물을 쏟을 뻔 했습니다. 여기 몇 가지 사연을들어보실까요?
#1. “엄마, 저 닭 다섯 마리 보낼 거에요. 내일 가지고 가야 해요.” 학교에 다녀온 아이가 다짜고짜 내일 닭 다섯 마리를 보내겠다고 해 무척 당황했다는 한 엄마의 제보가 있었다고 하네요.
#2. 아이들은 모금표 옆에 서서 “선생님, 탄자니아 아이들이 내 눈 앞에 있는 것 같아요.” “탄자니아 사람들이 닭도 키우고, 염소도 키워서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어요.”하며 소원을 빌었답니다.
#3. 1학년 받아쓰기 시간에 탄자니아도 써 보았답니다. 아이들은 “자, 다음은 탄.자.니.아. 써보자.”라는 선생님의 말에 “아하, 그 나라요?”하며 좋아했답니다.
#4. 모금 기간 동안 아이들은 “나 돈 냈어.”라는 말 대신 “난, 밥 10그릇 보낼 거야.” “난, 닭 5마리 보낼 거야.” “난, 염소 2마리 보낼 거야.” “오늘아침에 닭 2마리 또 보내고 왔어.” “나도 내일 또 닭 보낼 거야.”라는 말을 외치며 다녔답니다.
#5. 매일 모금 스티커 판에 적힌 자신의 이름을 확인하며 뿌듯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현재 닭이 몇 마리나 보내졌나 세어보며 무척 신나했대요. 마치 자신이 다~ 보낸 사람 마냥 짐짓 만족해 하는 표정까지 지으며 말이에요. 친구들은 지구 반대편의 멀고도 먼 ‘탄자니아’라는 나라가 옆 동네처럼 친숙하게 느껴졌대요. 그리고는 물었답니다. “차 선교사님은 언제 또 우리 학교에 오세요?”라고요.
‘닭 & 염소 프로젝트’ 그 시작
8월 중순, 탄자니아로 돌아와 세 곳의 지역구(Njiro, Minjingu, Malamba) 목사님들께 연락을 취하고, “닭 & 염소 프로젝트”(Kuku & Mbuzi Project)의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한국의 어린 학생들의 귀한 자금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라는 설명도 덧붙였지요. 따라서 이 선물은 꼭 필요한 분들에게전달되어야 했습니다. 연세가 있는 어르신, 홀로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 또는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분들을 추려달라고 부탁을 드렸지요.
제일 먼저, 올해 초부터 닭을 지원해 달라는 요청이 끊이지 않았던 기데루(Gideru) 마을의 하자베 부족 여성들과 에쉬케쉬(Eshkesh) 공동체를 위해 닭 40마리(한꺼번에 많은 닭을 구하기가 어려워 차근차근 10마리씩)를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광야에서 방사 형태로 키우다가는 족제비나 뱀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기에 집에서부터 반다(Banda, 닭장)를 만들어 조립형태로 가져가 세우기로 했습니다. 예전에는 마반지(Mabanzi, 목재소에서 처음 절단돼 나오는 나무껍질과 얇은 속피)를 주로 사용했지만 흰개미들이 서식하며 죄다 갉아먹는 것을 본 후로는 보다 더 영구적인 자재를 찾게 되었는데요. 이번에는 2미터짜리 2*2(투 바이 투) 각목을 사이즈 별로 잘라 준비하고, 땅에서부터 아예 공간을 띄우기 위해 쇠파이프로 받침대도 만들었습니다. 조립이 끝난 닭장은 함석으로 지붕을 씌우고, 철망을두른 후, 두터운 모기장으로 한번 더 감싸 벌레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꼼꼼하게 막았습니다. 닭들이 날아오를 수 있는 2층 놀이터까지 만들고 난 후, 경첩을 달자드디어 완성된 닭장! 새 보금자리에서 푸드덕거리며 날갯짓 하는 닭들이 사랑스러워 보이는 순간입니다.
할머니의 박꽃 웃음
에쉬케쉬에서 돌아오니 명단이 준비되었다는 소식이 연이어 도착했습니다. 대상자들의 대부분은 나이가 많아 홀로 사는 비비(Bibi, 할머니) 혹은 싱글맘들이었는데요. 그 중,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이 레소이티(Lesoiti)에서 살고 있는 나마얀 응기리쇼(Namayan Ngirisho) 할머니 댁이었습니다. 남편을 잃은 마사이족 과부들이 대게 그러하듯, 할머니 역시 돌봄을 받을 만한 자식도, 변변한 살림살이도 없이 불편한 육신을 거들며 외로이 살아가고 계셨는데요. 특히 11명의 자녀 가운데 9명이 1~2년 새에 모두 풍토병으로 죽고, 두 아들만 할머니 곁에 남았는데, 그 중에서도 막내는 정신이상 증세를 보여 오히려 80대 노모의 수발을 받아야하는 상황입니다. “비비, 우나쿨라 차쿨라 가니?(Bibi, unakula chakula gani? 할머니, 식사는 어떻게 챙겨 드세요?)”라고 여쭤보니 “함나, 함나 카비사(Hamna, hamna kabisa. 없어요. 먹을게 어딨어.)”하십니다. 어제도 하루 종일 동냥하여 밥을 얻어 드셨다 길래 튀긴 카사바(Cassava), 빵, 여분의 식량, 그리고 50kg짜리 웅가(Unga, 탄자니아의 주식인 우갈리를 할 수 있는 옥수수가루) 한 포대를 전하고는 곧, 닭 12마리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드렸습니다.
얼마 후, 다시 찾은 할머니 댁. 할머니는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습니다. 삶에 짓눌린 어두운 표정 대신 치아를 드러내며 소리 내어 웃기도 하시고, 닭들이 말린 옥수수를 잘 먹는다며 사료를 직접 빻아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닭을 살피는 걸음걸이에도 왠지 모를 활기가 느껴졌구요. “나파타 응구브 자이디 쿠앙갈리아 쿠쿠 요테(Napata nguvu zaidi kuangalia kuku yote. 글쎄, 요 닭들을 돌보다 보니까 여간 재미진 게 아니야).” 자식을 죄다 잃다시피 한 할머니에게 닭들은 또 하나의 가족의 되어 삶에 의미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어린 학생들의 귀한 선물이 할머니에게 박꽃 웃음을 선사한 것입니다.
염소야, 드디어 네가 왔구나
카코이(Kakoi)라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나세리아니 로미투(Naseriani Lomitu)라는 마마역시, 염소 두 마리를 선물로 받았는데요. 카코이는 개척을 시작한지 불과 열 달밖에 안된 어린 교회입니다. 얼마 전, 한국의 안*권 집사님께서 후원해 주셔서 지난 주에야 건축이 모두 마무리 되었지요. 마마 로미투는 술주정뱅이인 남편으로 인해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집안일이나 자녀 양육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는데다 돈을 버는 재주도 없어 늘 공고(gongo, 사탕수수로발효한 술)에 빠져 지내기 때문이지요. 한 뙈기도 안 되는 밭에 콩을 심는 것도, 극심한 건기나 우기에 숯을 구해다 파는 것도 다 그녀의 몫입니다. 한번은 ‘내일은 옥수수를 전부 따야겠다. 한 달은 족히 살겠지.’했는데 다음날 보니 옥수수가 한 알도 없더랍니다. 인근의 타랑기레국립공원(Tarangire National Park)에서 마실 나온 코끼리 떼에게 옥수수습격을 당한 것이지요.
그런 마마에게도 오랫동안 소원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염소를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보아하니 소젖보다 더 값나가는 염소젖(goat milk)은 현금을 바로바로손에 쥐게 하는 황금알이 분명했습니다. 애들이 배고파하면 바로 먹일 수도 있고요. 게다가 쌍둥이를 넘어 세 쌍둥이, 네 쌍둥이까지 새끼를 낳으면 재산은 그 만큼 두 배, 세 배로 늘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마마에게는 염소 한 마리 사는 것이 저 높은 킬리만자로 산을 넘는 것만큼이나 어려워 보였습니다. 마침염소값을 고이고이 모아 슈카(shuka, 마사이들이 두르는 천)에 꼬깃꼬깃 넣어가지고 있으면,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무섭게 기어이 돈을 내놓게 되는 일이자꾸만 생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염소 두 마리를 가져가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전화를 끊자마자 ‘오로로로’(마사이들이 혀를 둥글게 말며 내는 기쁨의 표현) 소리를 내며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렸습니다. ‘아쉐 렝가이!!!’(Ashe Lengai, 마사이어로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자와디 야 뭉구(Zawadi ya Mungu.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가질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지요. 마마 로미투에게 염소는 그녀의 삶을 굽어 살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표요, 오랜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선생님, 있잖아요.”
“선생님, 오늘 아침에 엄마가 아이스크림 사먹으라고 천원 주셨는데 ‘탄자니아 돕기’에 기부했어요. 그런데 점심 급식으로 아이스크림이 나왔어요. 하나님이 제 마음을 아셨나봐요.” 민수가 신이 나서 말합니다. “민수야, 너 어제도 기부했잖아. 오늘도 또 했어?” “네, 선생님. 또 하고 싶어서요.” 신앙배경이 전혀 없는 가정의 민수가 드린 아이스크림 값, 그와 같은 귀한 마음들이 모이고 모여 지난 두 달 동안 총 두 곳의 마을(기데루와 에쉬케쉬)과 세 곳(레소이티, 카코이, 마고디)에 흩어진 23가정에 닭 87마리와 염소 33마리를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이상은 1차 지원에 해당하구요. 앞으로도 한 두 차례 더 이와 같은 규모의 닭과 염소를 지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글을 줄이며 지난 여름, 저희 선교사 가정을 환대해 주시고, 이런 은혜로운 사역을 경험토록 도와주신 광주삼육초등학교의 교장선생님 이하 모든 교직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끝으로 먼 타국의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하여 기꺼이 1인 1닭 모금 운동에 참여해 주신 모든 학부모님들과 학생들에게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광주삼육초등학교의 모든 교직원들과 학부모님들 각 가정에 임하시길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어린양과 사자가 뛰노는 저 하늘에서 응기리쇼 할머니와 민수가 만나게 될 그 날까지 사랑을 나누는 선한 사귐이 계속하여 이어지길 두 손 모아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