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2]hoosun
2012.12.01 19:20

쓰신 글을 읽노라면 18세기 말~20세기 초까지 우리나라에 와서 복음을 전하러 왔던 많은 개신교 및 카톨릭 선교사들의

고초가 생각이 나네요!!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였던 토마스 선교사는 한국땅에 내리자 마자 순교를 해야 했지요(제너럴셔먼호사건).

순교직전 토마스 선교사는 성경책 3권을 '최치량'이라는 12살 소년에게 주었고 이 소년은 성경책이 나라에서 정한 금서

임을 알고 '박영식'이라는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박영식'이라는 사람은 그 성경책을 가지고 도배를 하였지요. 여기서

 하나님의 놀라운 주권적인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경책으로 도배된 그 집을 '최치량'이 사서 주막으로 사용하게 되었고 후에 '최치량'이 회심한 후에 평양 최초의 교회(널다리골교회(장대현교회))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또한 토마스 선교사를 목베었던  '박춘권'이란 사람은 토마스 선교사가 죽기 직전 건네주려 했던 성경책이 궁금해서

 집으로 가지고 가서 홀로 읽게 되었는데 후에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영주교회의 영주가 되게 됩니다.

 또한 그의 조카 '이영태'는 후에 한글성경을 만들었던 레이놀즈 선교사 밑에서 한글성경 번역의 2/3을 하게 되지요.

세상사람들의 눈에는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가 자칫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안타까운 죽음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의 짧은 선교활동은 이 한국 땅에 너무나도 큰 말씀의 씨앗이 되어 이 땅이 결국 복음화되는데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큰 역사하심이겠지요!

 

언제나 최전선에서 수고하심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선한 영의 역사가 지금보다 1000배나 더 크게 임하여서 선교지에 큰 영혼의 수확이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부디 평안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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