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 교회에서

 

너른 황무지에 덩그러니 서 있는 교회, 저 멀리 햇빛에 반짝이는 은빛 양철 지붕이 눈앞에 들어옵니다. 점점이 보이는 사역자의 가족과 바라바이크(Barabaiq) 사람들. ‘세아유’(Seayu, 바라바이크어로 안녕) 가만히 불러봅니다. 그리웠던 가족들이여, 잘 지내셨나요?


항아리 정수기를 받으러 몰려드는 사람들. 소금 땅, 메마른 하늘과 부대끼며 늘 목말라하는 부족민을 위해 오늘 40개의 정수기를 챙겨왔습니다. 최병기 목사님, 박용귀 장로님(한국)과 박창우 장로님, 양운종 목사님(캐나다) 이 네 분의 손님들과 함께 말입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눈시울을 붉히시는 박용귀 장로님.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영혼 한 명의 귀함을 안다는 건 예수님의 심령이 아니겠냐며 우시는 장로님을 따라 저 역시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쳤습니다.


지난 2013년 개척을 시작한 이후, 오늘처럼 에쉬케쉬 한 마을이 전부 모인 적은 없었는데 참 많은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듭니다. 낯익은 마마들은 저를 보자마자 어깨를 끌어안고는 세아유, 세아유’, 볼을 비빕니다. 슈카(두르는 천) 안자락에서 조심스레 하얀 계란 뭉치며 생우유, 꼬끼오 닭을 꺼내어 두 손에 꼭 쥐어주는 고마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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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에쉬케쉬 인근의 도망가(Domanga)라는 마을에 오순절 교회가 한발 앞서 개척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배타적인 바라바이크, 하자베(Hadzabe) 부족의 방해로 사역자는 불과 몇 달 만에 사택을 버리고 도망치듯 마을을 떠나야만 했지요. 공교롭게도 광야에 텐트를 치기 직전, 오순절 교회 사역자가 떠난 빈집은 재림교회 사역자들인 가브리엘(Gabriel)과 조셉(Joseph) 두 사역자의 임시 거처가 되었습니다.


그 뒤로 옆 마을의 상황을 잘 아는 에쉬케쉬 사람들은 두 눈을 치켜뜨고 재림교회를 주시했습니다. 와중구(Wazungu, 외국인)들이 쳐 놓은 텐트를 북북 찢어 갈긴 후,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들의 등짝을 개 쫓아내듯 막대기로 후려 칠 때마다 그 반응을 살폈지요. 매 안식일 아침, 아이들을 앞세워 교회 갈 채비를 하는 마마들에게는 불호령이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교회가면 매 맞는 줄 알라고요.


하지만 텐트가 부서진 직후, 의료 전도회를 치르고, 우물을 파고, 연이어 물탱크를 설치하고, 가축을 생명처럼 여기는 부족들을 위해 약국을 열고, 스와힐리어로 제 이름, 제 나이조차 쓸 줄 모르던 바라바이크 아이들을 위해 작은 교회 학교를 운영하고, 그리고도 지금까지 떠날 줄을 모르는 재림교회를 그들은 놀라움으로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그 모든 시간, 그들과 함께 하셨던 한 분, 광야를 절대로 떠날 수 없었던 예수님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마을 전체가 마음 문을 활짝 열고 모두 모였던, 항아리 나눠주던 날, 에쉬케쉬 사람들은 이렇게 고마움을 드러냈습니다. “가니셀 마우르지 수르자. 아세트타냐와 바아후마.”(Ganisel mawurji surja. Assetanyawa baahuma. 이 교회는 정말 독특합니다. 당신들이 전하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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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쉬케쉬 마을 이장은 바라바이크 출신의 사업가 바주타(Bajuta)씨가 에쉬케쉬 소식에 염소 한 마리를 선물했다며 손님들께 염소를 전달해 주었습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바라바이크의 마지막 숙원인 초등학교를 지을 계획입니다. 평신도실업인협회(ASI, Maranatha)에서 1일 학교(One day school, 1일 교회와 마찬가지로 학교 건축을 위해 지붕과 뼈대를 세워주는 일) 여덟 칸을 지원해 주기로 약속하여 지난 몇 년 간, 머릿속으로만 꿈꿔 왔던 계획을 진행시켜 보고자 합니다. 건축만 모두 마무리 되면, 바라바이크 어린이들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교사까지 파견해 준다고 합니다. 내년, 이 사업이 가능하도록, 벽공사와 개교와 관련된 모든 준비에 부족함이 없도록 많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지난 4년간 에쉬케쉬 개척을 위해 평신도 사역자를 지원해 주신 고승석 장로님, 도망가 개척을 후원해 주신 노귀환 목사님, 최영미 집사님, 이숙희 집사님, 이건혜 집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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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부족한 에쉬케쉬에서 이틀밤을 텐트에서 자고 난 후, 한 컵의 물로 세수를 하는 장면입니다


이 사람들, 부시맨 맞아?

 

아름다운 별무리가 온 하늘을 수놓았던 에쉬케쉬의 밤하늘을 뒤로하고 그 다음날, 탄자니아 전역에 겨우 3,010명만이 남아있다는 원시부족 하자베(Hadzabe)를 찾아 기데루(Gideru)로 떠났습니다. 마을 어귀, 그늘을 드리운 커다란 나무 아래 아홉 가구, 45명의 부족원이 모여 있었는데요. 사냥꾼의 후예들답게 머리에 깃털을 꽂고, 활과 화살을 매만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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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서서 부족과 손님들을 소개하는 쿄모슐라씨입니다


특별히 기데루 지역은 하자베 보호구역이라 일반인들의 접근을 불허하고 있어 부득이 한 정부 관료와 함께 그곳을 찾게 되었는데요. 마냐라 주(Manyara District) 지방정부의 고위관료이자 재림교인인 마스위(Mr. Maswi, Regional Administrative Secretary)씨가 함께 동행 할 공무원이자 하자베 부족 연구원인 쿄모슐라(Mr. Kyomoshula)씨를 소개해 주어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기데루 지역은 21세기인 오늘날에도 가느다란 나무를 비벼 불을 지피고, 산열매, 야생뿌리, 야생꿀을 먹으며 사냥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원시부족의 땅입니다. 나무에 올라가는 대신 오부유(Obuyu, 바오밥나무의 열매)로 배를 잔뜩 채운 원숭이의 배변을 뒤져 열매를 먹는다거나, 비가 세차게 내리는 우기철이면 산중턱에 파놓은 바오밥 기둥(바오밥의 나무 기둥에 구멍을 파놓았다가 부녀들을 대피시킴)으로 달려가는 등 아직도 이들만의 생존방식이 꿈틀대는 곳이지요.


하자베 부족과 방문객들이 서로간의 소개를 마친 후, 부족의 전통 가옥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구불구불 터널이 이어진 듯한 독특한 형식의 가옥을 보니 볏짚을 켜켜이 쌓은 데다 내부에 부엌이 있어 혹시 불이 나면 어쩌나 괜한 걱정이 들었습니다. 구경을 마친 후엔 하자베들이 땅에 세워 놓은 과녁을 향해 활을 쏘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요. 기대도 잠시, 탄자니아에서 손꼽히는 사냥꾼들이라는 하자베들의 솜씨가 그야말로 형편이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장삼이사 (張三李四) 중 하나인 제 남편의 어쩌다 던진 화살 하나가 과녁 중앙에 꽂히는 불상사(?)’(하자베 입장에서는)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만, 끝까지 단 한명의 사냥꾼도 과녁을 맞히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죽기 살기로 고기를 얻어야 하는 진짜 사냥터에서는 이렇게 백전백패하진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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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방문을 기념하여 멋진 소 한 마리를 선물로 전달했습니다. 에쉬케쉬와 도망가 지역엔 정기적으로 가축 경매가 열리는데 손님들이 방문하는 기간에 즈음하여 경매에서 가장 좋은 소를 미리 구입해 놓은 것입니다. 윤기가 반질반질 흐르는 갈색 소를 전달하니 삥 둘러선 하자베들이 흥에 겨워 감사의 노래로 화답했습니다. 우리 손님들 역시, 그 속에 함께 어우러져 바바’(Baba, 하늘 아버지)를 외치는 모습에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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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데루를 나오기 직전, 박창우 장로님이 하자베 할머니 손에 꼭 쥐어준 사탕 한 알에 하자베 특유의 비즈(Beads) 팔찌를 얻은 것을 보시고는, 최병기 목사님이 할머니 곁으로 다가가시더니 여자인 할머니 목에 넥타이를 하나 걸어주셨습니다. 할머니는 어쨌든 기분이 좋아져 팔찌 하나를 끼워주셨지요. 덩달아 양운종 목사님까지 사탕과 팔찌, 물물교환을 성사시키셨네요. 이 재미난 광경을 뒤로하고 저희는 광야를 떠나 전도회가 열리는 발랑달랄루(Balandalalu)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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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타이를 매고 멋쩍어 하시는(?) 할머니와 손님들


(기데루를 떠나기 전, 하자베 부족은 저희 재림교회에 부지를 줄 테니 복음을 전해달라고 특별한 요청을 해왔습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신다면 이곳에 교회를 세우고, 하자베가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농법을 가르칠 수 있는 사역자를 파송할 계획입니다. 이 계획을 위해서도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