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전의 일인데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결혼한 후 목회를 나와서 첫 해에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사실 아이를 가질 준비가 안되었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다가 이듬해에 집사람이 아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니 임신했을 때 집사람에게 잘 못한 것 같아요. 어른 분들이 다른 것은 몰라도 애기 가졌을 때 잘 못해준 것은 평생 기억한다고 하던데... 저는 잘 못한 것 같아요.
맛있는 것, 제 기억에 한번 사준 것 같습니다. 사실 사달라고 많이 했던 것 같은데 그만...
입덧도 안해서 집사람처럼 애를 다 이렇게 가지고 낳다 보다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저희 누님이 족하를 가지고 입덧하고 링거 맞으면서 거의 '초죽음'이 되는 것 보고서 아, 그게 아니었구나 생각하게 되었어요. 저희 누님은 17시간 진통해서 아이를 낳았지요.
저희 집사람은 안식일 보내고 그 저녁 새벽에 출산했는데, 안식일 보내고 저녁을 먹고나서 9시쯤 되서 이것 저것 챙기더니만 저보고 '가자' 한 마디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물었지요, "어디?"
"병원에"
"진통이 와?"
"가자니까"
"진통이 오냐니까?"
"가자고!"
허참,,, 그래서 갔습니다. 출산을 위해서 처가쪽에 와있었지요. 차가는 충북괴산인데 청주의 이모님댁에서 대기중이었지요.
출산을 위해서 선택한 병원은 청주에서는 유명하다고 하는(?) '김대중산부인과'였습니다.
처음에 산부인과 이름보고 멍하니 있다가 한참 웃다가 그랬습니다. 정말 '김대중산부인과'더라구요. 청주SDA삼육외국어학원 가까이에 있던 병원이었습니다.
몇 해 후에 다시 가보았는데 없어졌더군요.
본격적인 진통을 한지 1시간정도 지난 새벽 1시 좀 넘어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집사람이 힘을 잘 못 주어서 힘이 많이 들었다고 의사가 말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난 후에 의사가 나오면서 제게 하는 말, "제가 애 놓은 것 같습니다" 의사 얼굴이 땀으로 정말 목욕한 듯 하더군요. 아이도 너무 힘들어서 출생후에 울지를 않았습니다.
조금 걱정했는데 나중에 다 괜찮아 졌어요.
진통할 때 집사람 죽을 듯 하더니만 아이가 태어난 후에 와~ 정말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요16:21) 않더군요.
출산하고 퇴원하고 처가에 데려다 주고 저는 부산에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다음주에 아이를 보러 가는데...
그때 드디어 일이 터졌습니다. 9월이었는데 그 주에 우리나라에 태풍이 와서 폭우가 내렸습니다.
그래도 저는 아이 하나 본다는 일념으로 한손에는 케이크, 한손에는 꽃을 들고 부산에서 기차를 탔습니다.
그런데 기차가 대구에 도착하자 더이상 가지 않고 서 있더군요. 설마.... 조마조마...
결국 안내방송왈, "승객 여러분, 죄송합니다. 폭우로 인해서 철로가 유실되어서 더이상 달릴 수 없습니다. 이점 양해 바랍니다. 오늘도 저희 KTX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시고자 하는 목적지까지 안녕히 가십시오."
'오우 마이 ....'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이대로 부산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아이의 얼굴이 아른 아른.... 
버스 터미널로 갔습니다. 그리고 청주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될 줄이야...
저녁 8시에 출발했는데, 영동 조금 못 가서 중부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 모두 폭우로 운행금지되었습니다. 차는 멈추어 섰고 도로위의 물이 줄어서 다시 출발할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동안 기다린 줄 아십니까?
그 다음날 점심 12시에 다시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16시간 동안 버스안에서 밤을 새고 먹지 못하고 자지 못했지요. 
정말 눈물 났습니다.
애는 보고싶은데 갈 수 없을 뿐이고, 마음 같아서는 걸어서라도 가고 싶은데 가는 길 모를 뿐이고...
그 다음날 처가에 도착하니 3시가 다 되었더군요.
아들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와락~
2시간 보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왔습니다. 학원이 그 다음날 등록으로 빠질 수가 없었지요.
가족이란 그런 것 같습니다. 핏줄이란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지만 사랑은 모든 것의 이유가 됩니다"
한목사님, 소현이가 얼마나 보고 싶을까?
16시간 동안 버스안에서 기다리면서 조금만 기다리면 운행이 재개되겠지... 하고 생각했던 것이 1시간, 2시간....16시간이 되더군요.
참 눈물 났지만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한 가지 이유와 방법이 있었습니다.
한 가지 이유는 사랑이었고,
한 가지 방법은 "조금만 더 기다리면 만날 수 있다. 조금만 더 기다리자, 그리고 조금만 기다린 후에 만나면 사랑하는 아이를 만날 수 있다" 하면서 그 아이를 만나는 상상을 했습니다. 눈을 감고 그 아이 얼굴을 떠올리면서 만나는 순간들을 상상했습니다. 
그렇게 상상하면서 16시간을 보냈지요.  (자녀가 많이 자란 부모님들은 이 글 읽으시면서 웃으시겠지요, 와우~ 그분들의 포스~)
참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정말 우리가 사랑한다면, 그리고 그 시간을 기다린다면 그 날을 상상하면서(성경적 표현으로는 소망하면서) 
주님을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just like that!
한목사님, 그렇게 상상하면서 더 견디십시오.
반드시, 그 날이 오니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마카오의 한길로목사님은 비자를 받았는데 사모님과 딸 소현이의 비자가 아직 나오지 않아서 잠시 떨어져 있습니다.
한목사님의 사모님과 딸 소현이의 비자가 12월 30일날 결정됩니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가족은 같이 있어야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