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여년이 흘렀네요.

20대의 젊은 열정 하나로 멋모르고 필리핀 천명선교사 2기로 지원한 저... 부모 밑에서 온실 속에 화초처럼 곱게 자란 저였기에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느라 열병을 앓았고 준비되지 못한 저 자신 때문에 힘들었었던 시간들... 필리핀의 조그마한 마을 실랑 까비떼 발루밧 세컨드의 숲속 낡고 거칠고 초라한 십자가 밑에서 얼마나 울며 매달렸던가! 그때마다 주님께서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저를 달래주시고 저의 떼를 다 받아주시고 힘을 주셨습니다. 그분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 이 자리에 결코 있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 십자가 밑에서 주님을 위해 내 평생을 바치기로 맹세했던 그 서약을 가슴에 품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돌아오자마자 쏟아지는 현실적인 문제들... 학업을 마쳐야 하는 문제, 졸업 후 취직문제, 믿지 않는 부모님과의 갈등... 이런 현실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을 때 연합회 청소년부 서기를 뽑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고 즉흥적으로 지원해 10대 1의 경쟁을 뚫고 합격했습니다. 그 당시 컴맹에, 삼육교육이라곤 받아보지도 못했고 우리 교회 내 전혀 백그라운드가 없는 제가 합격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하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부모님의 반대와 많은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같은 2기 선교사였던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했고 남편은 뒤늦게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삼육대 신학과에 편입하게 되었습니다. 삼육대 신학과를 졸업한 후 북아태지회 장학금으로 중국에서 중국어를 배울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주셔서 2년 동안 중국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아이도 어렸고 한 번도 배워보지 못했던 언어를 배우며 전혀 접해 보지 못한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 경험이 그동안 잊어가고 있었던 하나님과의 서약을 기억하게 했고 그 꿈을 이루고 싶은 갈급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와 영어학원 목회를 시작하고 여러 업무와 잦은 인사이동으로 인해 쉽게 세계선교를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남편과 늘 그 꿈에 대한 이야기만 나누고 기도하며 완벽한 타이밍에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 부르심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실 작년에 지원서까지 준비했다 제출하지 못하고 올해 드디어 9기 PMM으로 나가도록 허락하셨고 그 부르심에 “주님,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를 보내소서” 라고 응하였습니다.

  그렇게 기다리고 꿈꾸던 소망이 열리는 순간의 감동과 흥분도 잠시...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되고 걱정하는 저의 나약한 모습을 보고 다시금 힘 달라고, 하나님께만 전적으로 매달리고 맡길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선교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를 사용하셔서 하는 것이기에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라는 빌립보서의 말씀에 의지하며 담대히 선교지로 나가려 합니다. 너무나도 부족한 저를 주님의 도구로 사용하시려고 이제껏 연단하시고 인도하신 그분이 대만 땅에도 꼭 함께 하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