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이들이 내게 오는것을...

저는 어렸을때 가장 기억하는거 3가지가 있습니다
저는 강원도 홍천에서 살았구 지금도 부모님과 형제들이 그곳에 살고 있습니다
1번째의 기억은  제가 70년대초 어릴때 말라리아로 인해 고통을 받았던 기억입니다
당시 내가 초등학교 2-3학년때인데 추운날씨도 아닌데 기운도 없고 고열이나서
아버지와 함깨 매일 우리집트럭을 타고 운전하시는 기사님과 함깨 병원을 가야했습니다
홍천읍내에 있는 병원을 모두 다 갔지만 결국 병명을 알수가 없어서
아버지가 큰결심을 하였습니다 춘천에 있는 큰병원에 보내자고 말입니다
어머니는 무당을 불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굿을 하면 나을수 있다고..
두가지를 다하자고 하였습니다  초등학교 2-3년의 아이가 작두를 타고 있는 무당을
보았다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안그래도 아픈데 정말 무서웠습니다
결국 상태만 더 나뻐졌습니다
춘천의 병원에 가서야 알았습니다 내가 앓고 있는 병이 말라리아라고..
병원을 10번을 와야한다고...
지금도 기억합니다 당시에 매우 귀하던 바나나가 항상 내 머리맡에 있었고.
맛있는 것들을 항상  사다놓으신 아버지를 말입니다
나는 입맛이 없어서 먹지도 못하여서  작은언니가 내것을 먹다가 아버지에게 혼났던 기억을 말입니다

2번째 기억은 어릴때 방안에서 동생하고 언니하고 놀다가 방안에 있는 커다란 국솥에 동생이
넘어졌습니다 그당시 어른들은 모두 나가 계셨구 동생의 자지러진 소리에  집안일을 하던
분이 동생을 찬물로 씻기고 어른들이온후 병원에 데리고 갔던 모습이 말입니다 남동생은
공부를 잘하였지만 엉덩이에 생긴 아주 큰 화상흉터로 인해 육사를 못가고 공부를 잘하여서
서울대학에 가야했습니다

3번째는 우리집에는 그당시 입하나덜자고 시골에서 올라오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우리집에서 막일을 하고 식사만 하셨던 분들이었습니다

제가 해외빈곤아이들을 선교사님들과 함깨하면서 한국에와야하는 환아들을
기존에하는 단체들에게 해달라고 많은 부탁을 하였지만 모두가 거절을 하였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예산의 빠듯함과 대부분의 단체들이 기독교
단체들이 종교적인 이류로 거절을 한곳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할수 있는 한은 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해외무료진료를 따라가보면 아주 심한 환자들을 봅니다
저사람들은 어떻게하여야 치료를 할수 있을까?
저는 의사가 아니지만 나름대로 연구를 한것입니다
한국에 오게하던가 아니면 현지에서 할수 있는것이 무었일까? 라는 생각을 말입니다
한국에와서도 연구에 연구를 하는것입니다 기도하면서..

난병원중환자실에서 알았습니다
이세상은 잠시 왔다가 가는 곳이라는것을 말입니다
얼마전에도 한아이가 사망을 하여서 사망행정절차를 진행하였습니다
태어나면 출생신고하듯이 사망을 하면 사망에대한 행정절차를...
병원켬퓨터에 사망이라는 글자가 올라왔다는 사실을말입니다

난아이들에게 이야기합니다 "넌정말 사랑받기위해 태어났다고.."
세상모든 아이들에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