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6:1-15
웃사의 죽음(1-8)
1 다윗이 다시 이스라엘에서 정병 삼만 명을 징집하여서, 2 그들은 모두 이끌고 유다의 바알라로 올라갔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궤를 옮겨 올 생각이었다. 그 궤는 그룹들 위에 앉아 계신 만군의 주의 이름으로 부르는 궤였다. 3 그들이 언덕 위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꺼내서, 새 수레에 싣고 나올 때에, 아비나답의 두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몰았다. 4 그들이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올 때에, 아효는 궤 앞에서 걸었고, 5 다윗과 이스라엘의 모든 가문은, 온 힘을 다하여서, 잣나무로 만든 온갖 악기와 수금과 거문고를 타며, 소구와 꽹과리와 심벌즈를 치면서, 주 앞에서 기뻐하였다. 6 그들이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에, 소들이 뛰어서, 궤가 떨어지려고 하였으므로, 웃사가 하나님의 궤로 손을 내밀어 궤를 꼭 붙들었는데, 7 주 하나님이 웃사에게 진노하셔서, 거기에서 그를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었다. 8 주께서 그렇게 급격히 웃사를 벌하셨으므로, 다윗이 화를 내었다. 그래서 그 곳 이름을 오늘날까지 a) 베레스 웃사라고 한다. (a. 웃사를 침)
법궤 운반하는 방법(9-15)
9 그 날 다윗은 이 일 때문에, 주님이 무서워서 "이래서야 내가 어떻게 주의 궤를 내가 있는 곳으로 옮길 수 있겠는가?" 하였다. 10 그래서 다윗은 주의 궤를 다윗 성으로 옮기지 않고, 가드 사람 오벳에돔의 집으로 실어 가게 하였다. 11 그래서 주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벳에돔의 집에서 석 달 동안 머물렀는데, 그 때에 주께서 오벳에돔과 그의 온 집안에 복을 내려 주셨다. 12 누군가가, 오벳에돔의 집에 하나님의 궤를 보관하였기 때문에, 주께서 오벳에돔의 집과 그에게 딸린 모든 것에 복을 내려 주셨다는 소식을, 다윗 왕에게 전하였다. 그리하여 다윗은 기쁜 마음으로 가서, 하나님의 궤를 오벳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가지고 올라왔다. 궤를 옮길 때에 그는 큰 축제를 벌였다. 13 다윗은, 주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옮겼을 때에, 행렬을 멈추게 하고, 소와 살진 양을 제물로 잡아서 바쳤다. 14 그리고 다윗은 모시로 만든 에봇만을 걸치고, 주 앞에서 온 힘을 다하여 힘차게 춤을 추었다. 15 다윗과 온 이스라엘 가문은 환호성을 올리고, 나팔 소리가 우렁찬 가운데, 주의 궤를 옮겨 왔다.
▧ 묵상을 위한 질문
1. 웃사는 왜 죽임을 당했습니까?
2. 하나님께서는 왜 법궤를 운반하는 방법까지도 명령하셨습니까?
▧ 본문해설
웃사의 죽음(1-8)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쁨의 환성을 외치고 즐거움의 노래를 부르며 악기 소리의 곡조에 맞추어 커다란 소리를 내며 법궤 뒤를 따랐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이와 같은 승리의 광경을 목격하지 못했다. 엄숙한 기쁨으로 거대한 행렬이 산과 골짜기를 따라 나 있는 거룩한 성읍을 향해 가는 길을 메웠다.
그러나 “저희가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경솔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 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기뻐하던 군중들은 돌연히 공포에 사로잡혔다. 다윗은 깜짝 놀라 몹시 당황했다. 마음속으로 그는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였다. 그는 법궤를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 영화롭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렇다면 왜 무서운 형벌을 내려 기쁨의 때를 슬픔과 애통의 시간이 되게 하셨는가? 다윗은 법궤를 자기의 곁에 모시는 것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 법궤를 지금 있는 그 곳에 두기로 결심하였다. 가까운 곳에 법궤를 안치할 장소를 발견했으니 그 곳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이었다.
웃사의 죽음은 가장 명확한 명령을 범한 데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법궤의 운송에 관한 특별한 명령을 주셨다. 아론의 후손인 제사장들 외에는 아무도 법궤를 만지거나 덮여 있지 않은 법궤를 바라보아서도 안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고핫 자손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지니 죽을까 하노라”(민 4:15)고 지시하셨다. 제사장들이 법궤를 덮어야 했고 그 후에 고핫 사람들은 법궤 양면 고리에 꿰어 있는 채를 들어야 했다. 그들은 그 채를 결코 빼지 말아야 했다. 성막의 휘장과 널판과 기둥을 맡은 게르손 자손과 므라리 자손에게 모세는 그들에게 맡겨진 것을 운송할 수레와 소를 주었다. 그러나 “고핫 자손에게는 주지 아니하였으니 그들의 성소의 직임은 그 어깨로 메는 일을 하는 까닭이었더라”(민 7:9). 그런데 기럇여아림에서 법궤를 옮겨올 때에는 이 같은 여호와의 명령을 직접적으로 무시했고, 거기에 대해 아무런 핑계도 할 수 없었다"(부조, 705).
법궤 운반하는 방법(9-15)
"자기의 마음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롭지 않다는 것을 느낀 다윗은 웃사의 죽음을 보고 자기의 어떤 죄가 그에게 형벌을 가져오지 않을까 하여 법궤를 몹시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오벧에돔은 기뻐 뛰면서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보증으로서 거룩한 상징을 환영하였다. 온 이스라엘의 주의가 이제 가드 사람과 그 권속에게 쏠렸고 모든 사람들은 법궤가 그들과 잘 지내는지를 주목하여 바라보았다.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다윗에게 대한 하나님의 견책은 효력이 있었다. 다윗은 그가 전에 결코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의 율법의 신성성과 엄격한 순종의 필요를 깨닫게 되었다. 오벧에돔의 집에 내린 은총은 다윗에게 다시 법궤는 그와 그의 백성에게 축복을 가져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했다"(부조, 706).
▧ 적용
1. 웃사와 같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적은 없는가?
2. 나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거룩한 길을 가고 있는가?
▧ 기도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나의 뜻대로 마시옵고, 오직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게 하소서.
kimss36@hanmail.net
이런 저런 핑계로 순종하기를 지체하는게 있지는 않는지 내 자신을 살펴보게 된다.
순종의 지체는 자연스럽게 율법에 대한 경시로 나타나는것 같다.
그럼으로 그리도 거룩한 법궤를 직접 손으로 만지는 실수를 범하듯, 나의 삶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것들을 함부로 다루지나 않는지 자성하고 경성해본다.
얽매임으로서가 아닌 기쁨으로서의 율법에 대한 순종은 하나님의 큰 복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나를 두는 것이다.
율법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더 바꾸어야 함을 느낀다.
오벧에돔 사람들과 같은 믿음과 기쁨의 순종의 마음을 허락하소서!
거룩한 주님의 말씀을 거룩하게 대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내게 은혜를 베푸신다.
목숨을 내걸고 받들어야 하는 말씀을, 나는 나를 드높이기 위해 받드는 시늉만 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웃사는 주님의 법궤를 너무 가볍게 보았다.
쓰러질 듯이 보이는 주님의 법궤, 인간의 예상으로는 그것이 쓰러질 듯한 각도를 취하고 있어도,
주님의 눈에는 그것은 쓰러질 각도가 아니라,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할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주님의 말씀을 받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 나를 받들어 주시는 것이 아닐까..
거룩한 말씀을 통해, 내 영혼 거룩케 하소서
오늘은 새벽 기도회에 기도 제목중에 나라의 우상과 미신을 없애 주시라는 제목이었다,
그러나 나는 얼마나 판타지(미신)물을 좋아하는가 (반지의 제왕??) 무릎팍 도사는 얼마나 재미있는가?
원칙에 충실한 사람이 되어야 겠다. (하나님의 은혜로)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고 의와 죄를 구별하고 하나님의 일과 세상의 일을 구별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언제나 깊은 영적 통찰력이 필요함을 생각해 봅니다.
주여 저로 깨어 있게 하시고 분별력과 미래를 직시할 수 있는 영적 통찰력을 갖게 하소서!
죄가 아닙니다..
죄로인해 생기는 죄된 행위들입니다.
죄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아픈곳의 진단이 있어야 정확한 치료를 하듯이
죄의 본질을 알아야 예수의 구원에 대하여 감사하며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죄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죄를 짓는 모든 행위는 하나님이 나의 중심이 아닌, 나를 그 중심에 두는 것때문입니다.
웃사의 행동도 그러했지만, 현대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너무도 당연히 그러합니다.
경건의 모습은 있지만, 속은 썩어버린 현시대에 우리는 우리의 마음의 중심에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그를 내 중심에 두길기도하겠습니다.
아멘..
가끔 잊는다. 하지만 후회하지 못할때가 있다.
긴장하며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정상이어야 하는 것같다.
거룩함을 범하려는 인간들의 패역함을 우리는 모른다.
내 영혼을 하나님께 의탁하고 거룩하게 되어야 할것이다.
하나님의 형벌이었다." 인간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왜곡하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사단이 간절히
기다리면서 바라는 것들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는 죽임을 당했다.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면서 의아해 한다.
왜 하나님의 법궤를 지키고자 했던 웃사가 죽어야 했는가라고...
하지만 웃사는 죽임을 당한 것이 마땅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법궤는 분명히 메고 이동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수레로 이동하는 근본적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렇지 아니한가.
하나님의 사역을 한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지시하지 않은 방법으로 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면서 그 사역이 잘못되면 하나님이 너무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는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방법대로 해야만 할 것이다.
그것이 억울하게 보이는 죽임을 당하지 않는 방법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업이 번창하도록 하는 방법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방법이다.
오늘 하나님의 지시대로 순종하는 하루를 살아야겠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한것이 아닐까? 그는 하나님의 일을 도우려 하지 않았나?
인간적으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생각 나의 뜻인것 같다. 나의 생각으로는 이것이 하나님의 일인데
나의 생각으로는 이것이 맞는데 라고 생각하는 것
그러나 내가 생각해야 할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때 모든 것들을 이해할 것이다.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게 기도한다.
거룩한 말씀 아래 나의 모든 생각과 이성과 감정.. 나에게 있는
모든 것을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 아래 순종하기 원한다.
이 세상에서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하나님의 방법과 명령을 순종하며 살고자 한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을...거룩한 사명을 감사히 순종으로 따르는 자가 되어야겠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역을 잘 감당하자!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항상 기도드립니다.
그 거룩에 우리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
우리가 영적으로 죽든 살아서 숨쉬든 하는 것 같다.
지금의 내 자신이 웃사와 같은 사람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나 생각하기는 웃사보다는 우리에게 더 큰 희망과 소망이 있는 것 같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이라는 주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있기때문이다.
우리들에게 그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인 거룩함의 사모일 것이다.
우리는 거룩할 수 없지만 법궤를 대하여 말씀하신 방법대로 하지 않고 인간적인 생각으로 행하는 모습은
우리가 정한 방법대로 믿기를 원하는 인간들의 마음의 반영이 아닐까... 사람들은 거룩의 속성을 사람에게서
찾으려고 한다. 우리의 수고와 봉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거룩함에의 사모!'. 그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방법으로라야 한다.
오늘 우리는 회개하는 심정으로 우리를 구원하실 주님 앞에 주님의 방법을 물어야한다.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되
그 분의 뜻대로 순종하여야 할것이다.
그 모든 상황들을 통하여-
"다윗은 그가 전에 결코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의 율법의 신성성과 엄격한 순종의 필요를 깨닫게 되었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였지요.
그가 깨닫게 되었을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제가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될 때, 또한 기뻐하시겠지요.
"제가 전에 결코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의 율법의 신성성과 엄격한 순종의 필요를 깨닫게" 되기를
오늘 나의 아버지께 간구합니다*
인간이 과연 거룩해질수 있는가...
거룩 그 자체이신 하나님 안에 거할때에야만 비로소 거룩하다 칭해 주실것이다...
하나님 안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모든 시도와 동기는 웃사와 같은 결과를 불러 올 것이다...
사소한 것 같은 일에 대해서 아무렇게나 행해도 무방하다는 사고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그 어떠한 일도 가볍게 행할 수 없으며
더욱이 하나님께서 직접 명하신 일에 관해서는 더 신중해야 할 것이다.
얼마나 많이 내 방법으로 예배를 드리는가? 가인처럼........내 눈에 좋은 것으로 ........드리는 것아니라
하나님입장에서 좋은 것을 드리는 하나님 방법에 맞는 예배를 드려야겠다.
웃사를 통해서 오늘의 나의 모습을 뒤돌아보게된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존재를 경홀히 여긴다면 그보다 더 큰 죄가 없을 것이다.
예배를 드리는 행위에 있어서도 그 의미를 통해 본다면 결코 예배자의 모습을 잊어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올바로 경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아무리 좋은 목적으로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잘못된것이다.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경배해야지...
은연중에 그분의 뜻과 어긋나는 행동을 많이 한것같다. 심지어 예배를드리는 태도에서도.
온전하고 그분의 뜻에 맞는 예배를 드리고 그분의 길을 따라야겠다.
너무나도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 단어이다...
성도, 성전, 성경,, 모든 것은 거룩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고
우리는 구별되어 주님의 말씀을 순종해야한다.
거룩한 법궤..
결코 변할 수 없는 그 법궤는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이다.
사랑의 율법,,,
우리는 율법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그제서야 우리는 진정한 바라봄으로서의 변화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매일 매 순간 그리스도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자!!
그러나 그것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명하셨다.
아들이 아버지를 닮듯이
너는 내 자녀이니 나를 닮으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인간의 안목으로 보면 하늘처럼 멀어보이는 이야기이지만
영적인 유전법칙에 따르면 어떤 면에서는 자연스러운 이야기일 것이다.
하나님의 품성을 닮는 마음으로 거룩한 안식일에 참여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닮는 마음으로 거룩한 예배에 참여하는 일이 필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