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M 2기 대만 미아오리교회 채광병 목사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1991년 여름, 내 인생의 항로를 수정하게 만든 한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1000명 선교사 운동이었다. 충청합회 장막부흥회 때에 이재룡 목사님께서 강사로 오셔서 들려주신 1000명 선교사 운동에 관한 이야기는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고 말았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대학 합격증만을 들고 집으로 내려와 나름대로의 일을 계획했었고 3년 이상을 삼육식품에서 일하면서 선교하기를 희망하여 각종 전도회에 참여하여 돕곤 하였지만 속에 있는 갈증이 채워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1000명 선교사 운동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1000명 선교사에 대한 소식은 나로 하여금 신학공부에 대한 새로운 길을 제시해 주었다. 그것은 삼육대학이 아닌 필리핀으로의 유학이었다. 선교사의 시작이 필리핀일진대 그렇다면 필리핀에 가서 신학공부를 하면 어떻겠느냐는 아버님의 제안이었다. 그 제안을 들었을 때 나의 가슴은 마구 요동쳤다.

그다음 해인 1992년 1월 신학공부를 위해 필리핀 AIIAS로 향했고 그해 10월 시작된 1000명 선교사 1기로 지원하여 선교사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선교사 경험은 언제나 나의 마음속에 살아있었고 집사람을 만났을 때에 같이 선교사의 길을 걷자고 1000명 선교사 증명서를 전해 주었다. 1000명 선교사의 경험은 그토록 나에게 잊지 못할 경험이며 나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선교사의 경험을 마치고 신학을 공부한 후 목회의 길을 걷기 시작하여 10여 년의 시간이 지난 후 PMM에 대한 소식이 들렸다. 어쩌면 1000명 선교사를 지내면서 꿈꾸어 오던 길이었는지 모른다. 10년 전에는 혼자의 몸으로 선교지에 갔지만 이제는 가족과 함께 선교지로 향할 수 있다. 집사람과 오랜 시간 기도하며 이 길에 대하여 의논하였고 드디어 결정하였다.

이제 대만 선교를 위하여 이곳에 온 지도 2년의 세월이 지나고 있다. 물설고 낯선 이곳, 언어가 다르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지만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넉넉히 지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가 지내는 곳은 미아오리(苗栗)라는 지역으로써 커자(학가)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예로부터 커자 사람들은 근면하고 근검절약하기로 소문이 난 사람들이다. 심지어 이곳은 백화점이 들어섰다가 6개월 만에 문을 닫은 곳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다른 곳보다 불교와 도교가 성행하고 120년 된 장로교회의 교인 수가 120명 정도인 곳, 20년 전에 재림교회가 있었지만 선교가 안 되어 결국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곳에 지금 우리가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러한 여건 가운데서도 새로운 영혼을 보내 주시고 계신다. 이곳에서 1명의 침례자는 원주민 20명과 같다고 말하지만 주님께서는 지난해 12명의 침례자를 허락하셨다. 주님께서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하시리라는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도 해당하며 그것을 체험하고 있다. 주님을 알지 못하는 너무나 많은 사람이 있는 이곳에 하루속히 주님의 말씀을 증거 하는 선교사가 될 수 있도록 많은 기도를 부탁드린다.